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간 죽어야 되듯, 삶의 시작과 끝은 같아도 과정은 서로 다릅니다. 같은 삶을 살지 않았어도 누구나 죽으면 21그램의 무게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영혼의 무게 21그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마약재활치료센터에서 크리스티나(나오미 왓츠, Naomi Watts)는 남편과 아이들이 곁에 없었다면 마약중독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환자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즉 나보다 우리, 가족이란 울타리 혹은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위기를 극복하라는 말이겠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기독교에 의지하는 잭(베네치오 델 토로, Benicio Del Toro)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불량 청소년들에게 “주님은 너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의 움직임도 알고 계신다” 라며 죄짓지 말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합니다.
심장의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교수 폴(숀 펜, Sean Penn)은 심장이식수술로 새 삶을 얻지만 아내의 인공수정 임신을 거부하고, 기부자의 아내 크리스티나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그녀의 아픔까지도 사랑하고 빈자리를 채워주려고 노력합니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인연이 닿은 세 사람의 시선으로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깊이 있게 다룬 영화’21 그램, 21 gram’의 이야기입니다. 2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 빈민가의 삶을 주제로 그린 영화 ‘비유티풀, Biutiful’로 칸느와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과 외국인영화 작품상을 받았던 감독 곤잘레츠(Alejandro Gonzalez Inarritu’ )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곤잘레츠 감독의 라스트넴은 이나리투가 아니라 곤잘레츠입니다.)
참고: http://here-i-am.tistory.com/93 비유티풀
인간은 평화롭고 여유로울 때에는 기억을 잘 떠올리지만 위기가 닥치면 과거를 되돌아보지 못해 잘못을 반복합니다. 극복할 수 없는 유혹들을 떨쳐 내려고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거나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 건 인간이란 동물이 정신적으로 나약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폴의 의도된 행동으로 만나고 사랑을 나누지만 둘이 사랑하면 할 수록 교통사고로 잃은 전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원죄의식으로 크리스티나는 마약을 다시 시작합니다. 폴이 잭을 죽이기로 결심하는 것도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그녀의 빈공간을 채워주기 위함이고 심장이식을 받은 자신에게 원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사랑하면 할 수록 전 남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크리스티나, 뜻하지 않게 사고를 일으켜 세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잭의 죄책감, 이 둘의 불행한 결과로 얻어진 심장으로 새 삶을 부여 받은 폴 또한 자책감을 느낍니다. 심장이식수술의 부작용으로 누군가 죽어야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폴은 삶 자체가 고통스럽습니다.
이 세 사람은 불행한 인연으로 만났지만 종교와 마약이 그들의 아픈 추억을, 트라우마를 지워주지도, 해결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폴은 잭을 죽이지 못했고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김으로서 그들의 고통과 원죄를 대신했던 것이죠.
예수를 원망하며 고행의 길을 선택했던 잭은 가족 곁으로 돌아갑니다. 원죄라는 빈자리엔 폴의 아이가 들어와 크리스티나는 삶에 대한 의지를 느낍니다. 결국 폴의 선택은 잭과 크리스티나가 가졌던 트라우마를 지워 준다는 것이죠.
인간은 누구나 삶의 과정은 다르지만 그래도 삶은 지속됩니다. 수십억가지의 삶이 있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죽음을 막을 수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삶은 계속 됩니다. Life goes on
폴이 심장을 기부한 자의 신분을 탐정에게 의뢰해 크리스티나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그녀를 보호해 주는 모습, 홀로 식사를 하는 그녀에게 신장에 안 좋으니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라며 접근하고, 마약에 취해 억지 운전하려는 그녀의 핸들을 뺏어 집까지 라이드 해 주는 모습, 그녀가 깰까봐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리는 장면은 참 아릅답게 보였습니다. 그녀의 아픔까지도 사랑하겠다는 것이겠죠. 숀 팬의 연기를 볼 때마다 그의 연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숀펜과 나오미 왓츠는 영화 '페어 게임'에서도 함께 했던 훌륭한 배우들입니다.
특히, 크리스티나와 처음으로 식사를 하면서 그녀에게 들려 주었던 베네줄리안의 시는 인상 깊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불행한 사고가 없었다면 이 세 사람의 인연은 닿을 수가 없었지만 어차피 인연이란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불행으로 만나든 아니든.
“우리가 가까워지도록 지구는 돕니다. 우리가 같은 꿈을 꿀 때까지..."
이 영화가 ‘메맨토’, ‘박하사탕’ 같이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지지 않고 현재에서 과거, 과거에서 과거, 과거에서 현재로 불규칙하고 복잡하게 오가는 건 우리의 삶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감독의 표현 같습니다.
절망과 희망, 분노와 복수, 증오와 사랑이 얽히고 설킨 영화 ‘비유티풀’ 에서도 감독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다중적인 사회구조의 불편부당한 모순 속에서 우리의 삶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메시지를 던져 줍니다. 곤잘레츠 감독의 대부분 영화에서 사회의 부당함에서 비롯된 결손가정일지라도 그들의 삶 또한 소중하기 때문에 인간, 가정의 소중함 그리고 사랑으로 삶은 지속된다라는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폴(숀펜)은 이 영화를 끝맺으면서 나레이터로 인간은 누구나 죽으면 21그램의 무게가 빠진다고 합니다.
즉 삶과 죽음의 차이는 영혼의 무게라는 것이죠. 사실 21그램이라는 무게가 의학적으로 입증된 건 없습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종교적 영향력이 현재보다 컸던 19세기 말 던컨 맥두걸 박사의 가설은 당시 과학이나 철학이 종교의 영향력을 받을 수 밖에 없던 시대적 상황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무게의 차이를 떠나 21그램의 가벼운 영혼이 절대적으로 가볍지 않음은 Life goes on, 삶은 지속된다 는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어떨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옥이든 천국이든 어차피 극복하고 살아야 될 과정이니까.
How many lives do we live? How many times do we die? They say we all lose 21 grams... at the exact moment of our death.
Everyone and how much fits into 21 grams? How much is lost? When do we lose 21 grams? How much goes with them? How much is gained? How much is gained?
Twenty-one grams is the weight of a stack of five nickels. The weight of a hummingbird. A chocolate bar. How much did 21 grams we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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