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단에 호랑이를 조련하기 위해 무르시아로 가서 호랑이를 키웠지. 호랑이들이 빅터를 좋아하는 거 같아서 나와 딸이 직접 보고서는, 딸이 애완용으로 데려 오자고도 했을 정도였거든.
지난달에 빅터 엄마를 봤는데, 호랑이가 빅터를 처참하게 죽였다고 하더군. 6년간 매일처럼 밥을 주었는데도 말이야.
근데 빅터가 한가지 실수를 했어. 굶주린 사람을 믿는 건 위험해. 더구나 자식까지 굶주린다면.”
아내와 아이와 헤어져야 될 불체자를 위해 석방 청원을 해 달라는 우스발 (Javier Bardem)의 도움을 부패 경찰 잔크(Rubén Ochandiano)가 거절하면서, 누구도 신뢰하지말고 어서 도망치라는 조언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빈민가에서 세상의 밑바닥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감독의 영화 '비유티풀, Biutiful' 이야기다. ‘멋진 하루’에서 병우가 정열적인 나라 스페인에서 막걸리 바 사업은 현실이 아니라 꿈만 꾸어야될 상상속의 이야기라는 현실이 절망으로 와 닿았다. 물론 어느 대도시나 빈부는 존재하지만
암울하고 무거운 주제를 가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어느 누구도 착잡한 심경을 가눌 수 없을 것이다. 절망적이고 고통스런 모습을 사실적으로 연기한 하비어 바르뎀이 칸느 남우주연상을, 오스카에서 외국영화 작품상을 받았지만 보는 내내 불편함은 지울 수가 없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을 더 벌고자 희망의 나라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들어 온 중국인과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절망적인 현실보다 미래의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오늘을 이해하고 순응하며 살아간다. 더 빨리 벌기 위해 마약장사 등으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다 검문에 걸려 강제출국 당하지만 자식들의 삶은 자신보다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자신은 못 배웠어도 자식만큼은 배워야 된다는 삶의 연속성은 곤잘레츠 감독이 영화 '21 그램'에서 얘기했던 삶의 연속성의 연장이다.
Life goes on. 삶은 지속된다...
페이크업체와 건설 족들은 약자의 노동을 착취해 비용을 줄이고 더 많은 이익을 가지려고 최소한의 인권만 제공한다. 그들에게 불체자 인력을 소개해주고 돈을 챙기는 양아치와 불체자를 단속하지 않는 조건으로 매달 상납을 받는 부패 경찰이 사회의 어두운 사각지대를 형성하면서 희망보다는 절망적인 사실만 보여주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다룬 볼만한 영화다.
전립선 암으로 몇 달 후에 우스발은 삶을 내려 놓아야 한다. 자식들을 누구보다 올바르게 키우려는 보통의 아버지이지만 강자와 약자를 연결 시켜주고 그 커미션으로 먹고 사는 사회의 양아치다. 죽은 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신통력과 인력소개로 버는 수입이 대부분이다.
알코올과 마약, 섹스 중독으로 살아가는 전처는 우스발에겐 귀찮은 존재이지만 아이들의 장래 때문에 고민한다. 그래서 폭력적인 전처보다 추방당한 불체자의 아내 이게(Diaryatou Daff)를 더 신뢰한다. 갈 곳이 없는 그녀에게 아이를 보살펴 주는 조건으로 자신의 아파트를 제공한다.
이게와 우스발 자식들의 보이지 않는 벽은 사랑으로 허물어 간다. 애들의 등하교시에도 서로의 이질감으로 함께 걷지 못하지만, 집이 가까워 오면서 함께한다. 이게가 두 아이의 뒤에서 걷는 장면은 마치 사자가 새끼를 보호하며 걷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진다.
우스발이 남은 돈을 그녀에게 주며 아이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할 때 이게는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도망치지만 아이들을 위해 다시 돌아온다. 절망스럽다가 희망적으로 보이는 건 가족의 소중함.
우스발이 암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삶이란 매일 매일 죽어가는 것이라는 말에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데 슬픔으로 다가왔다. 인간은 하루를 살아가지만 죽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커텐을 제쳤을 때 눈부신 햇살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 삶을 내려 놓아야 될 우스발에겐 희망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곧 그녀의 사랑이 내 대신 살아줄 아이들의 내일이지 않겠는가.
자신의 나라에서 팔려 온 중국인을 보살피지 않는 중국인의 모습은 어느 사회나 가진 자가 없는 자의 하루를 팔아 부를 축적하려는 비극적인 모습이다. 결국 더 큰 욕심 탓에 모든걸 토해내고 비극으로 끝나지만 맨하튼에 있는 차이나타운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영화가 시작하면서 우스발이 젊은 사람에게 존댓말로 이야기를 나눌 때는 갸우뚱했지만 처음과 마지막의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우스발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우스발의 아버지는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 치하에서 사형을 면하기 위해 멕시코로 도주했었고 그곳에서 폐렴으로 젊은 삶을 마감했지만 정작 우스발이 사진으로만 봐왔던 아버지를 실제로 본 것은 묘지 이장을 하면서 화장하기 전 짧게 본 것이 전부이다.
아버지를 회상하며 우스발이 삶을 내려 놓기 전, 딸에게 자신을 기억해 달라며 부둥켜 안고 울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매우 슬펐다.
영화 제목 'Biutiful'은 우스발의 딸이 Beautiful을 잘못 쓴 단어를 타이틀로 정한 것이다.
유인촌이 빵점 처리해서 유명해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칸느에서 각본상을 받을 때, 하비어 바르뎀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꼭 한번씩 보시도록. 세상의 아픔을 모르는 자는 사랑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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