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홍상수 감독이 ‘옥희의 영화’로 뉴욕영화제를 찾았을 때, 관객들에게 자신의 영화에 대해 너무 많은 해석과 의미를 두지 말라고 하더군요.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히는 소소한 일들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듯, 이해되지 않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라고 했습니다.
영화 마지막, 송교수가 다음학기 강의를 그만 둔 것이 자의에 의한 것인지 타의에 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낙지를 토하고 난 뒤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대사에 대해, 이해 못한 미국인 관객의 질문에(저 또한) 홍상수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미국인 관객의 눈에는 생낙지를 먹는 것과 토한 낙지의 꿈틀거림이 신기해서 물어봤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토해내서 꿈틀거리는 낙지가 전체 스토리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해석하는 차이가 그 미국인과 저의 차이점이 아닐지, 즉 보고 느끼고 토해내는 시선의 차이, 받아 들이는 차이점이 인간마다 같지는 않을테고 분명 존재하겠죠.
홍상수의 영화는 몇 개의 스토리가 연결되어 만나게되며 우리는 어떤 의미나 복선이 깔려있을 것이라 찾아내어 의미를 부여하지만 홍상수에게는 그런 의미 조차도 불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이미 단편으로 나왔던 '첩첩산중'에서 교수와 여제자 그리고 남제자의 모습을 봐 왔기 때문에, 이 영화도 홍상수의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 가질 수 없는 남자(유부남)를 더 사랑하고 애증하는 여자가 있고 그저 잠만 자고 싶은 남자와 그 여자를 가지고 싶은 남자의 삼각관계가 존재 합니다. 송교수와 옥희 그리고 진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홍상수를 어떻게 특징 짓느냐 혹은 어떤 감독으로 분류를 하기 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함에도 너무 깊게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해서 고민하다보면 해괴한 논리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너의 틀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자유롭게 사고하라는 의미가 맞지는 않을지?
제가 홍상수를 끄집어 낸 것은 요즘 유시민의 아메리카노 커피 논쟁이 소셜네트웍에서 뜨겁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 대중이 아무렇지 않게 주문하고 마시는 아메리카노 커피에 부르조아급 의미를 부여한다는 가설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더 슬픈 건 이 쓸모없는 소모전이 자칭 진보라 불리는 이들에게서 시작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통진의 부정경선 행위의 비 도덕적 모습을 드러나게 한 유시민은 그들이 죽이고 싶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총선 전만 해도 함께 힘을 모아 진보를 통합하여 통진을 만들었을 때 대부분(일부는 이미 예측을 했었고) 이런 상황까지 오리라 예측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논쟁의 시작은 관악을 부정경선이 단초가 되었고 이정희의 실기로 시작된 게임이지만 당의 논란 기준을 도덕적 가치에 부여하지 않고 책임회피에만 급급하여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문제가 벌어지는 것이겠죠.
자칭 진보라 일컫는 운동권 일부 좌파세력 언행을 보면, 스타벅스에서 커피한잔 마시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소셜 네트웍에 사진을 올리고 서로 찬양해주면서 좋아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노동, 환경보존의 현장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를 타도합니다. 사실 임금과 환경의 문제는 보수 진보를 떠나 대중이 깊게 고민해야 될 문제이지만 자칭 진보는 운동의 현장에서 미제타도를 외치고 온라인에서는 스타벅스를 마시면서 행복해하는 언행불일치의 모습을 보입니다.
유시민의 아메리카노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브루조아 의미를 부여한 건 단지 권력을 어떻게 해서든 탈취하겠다는 의미만 있을 뿐이죠. 어떻게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갖겠다는 사고, 아마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지난 사건을 되짚어 보면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예전에 대형 마트상권이 동네상권으로 진입할 때, 자칭 진보들에게 이런 얘길 해 준적이 있습니다. 미국은 지방 자치제의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라 타운 공청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대형 마트가 타운에 함부로 진입할 수가 없죠. 그렇다면 한국사회도 이런 점에 대해 공부를 하고 고민을 하라 즉, 현실적으로 공청회 시간을 퇴근 후에 열리게 만들어 주민들의 의사를 묻고 투표를 해서 대형마트가 진입하지 못하게 고민해야 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했는데 아직 이런 기본적인 고민은 하질 않고 오로지 중앙 행정부와 관계기관을 타도하는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물론 소통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 현정부도 큰 문제가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뉴욕에서는 아메리카노 커피가 한국 돈으로 천오백원에서 이천원사이에 소비자에게 팔립니다만 서울은 그렇지 못하죠. 즉 시설비가 들어갈 것이고, 막대한 렌트비가 존재를 하니 뉴욕가격으로는 팔 수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브랜드를 좋아하니 비싼 커피를 마셔야 멋 들어지지 않겠습니까? 즉 행복은 돈과 연결된다는 사고와 스펙이 좋아야 인정 받는다는 모순된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이죠. 이 점이 뉴욕과 서울의 차이점입니다.
바로 이 차이점을 간과하고 아메리카노 커피를 브루조아급 고급커피로 만들어 현재 진보가 벌이고 있는 쓸모없는 논쟁의 모습입니다.
커피는 이미 우리 일상의 자리에 자리잡고 있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마시면 되고 한 모금에 행복하면 되는 것이겠죠. 홍상수의 영화처럼 깊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는 아메리카노 커피에 대해 해괴한 논리를 들이대는 작태는 한국사회가 G20국에 걸맞는 국가인지 물어보고 싶더군요.
진보는 꾸준히 변화해야 하는 것이죠. 스스로 틀안에 가두고 새로히 룰을 만들어 규제하면 안 됩니다. 이건 뭐 사회가 도덕적 가치도 없고 합리적 기준도 없이 쓸모 없는 논쟁을 만들어 싸우는 모습을 보면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는 가능할지 한심할 뿐입니다. 자신의 비윤리적인 언행으로 수구들의 잘못을 다 묻어주고 탐욕에 물들은 거짓말쟁이들이 사회정의를 외치는 모습이 처절합니다.
그저 아메리카노 한모금 마시면서 느끼는 행복감 그리고 여유에 대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뱀빨:
어제 박근혜가 봉하마을을 찾았군요.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까요? 과연 이 여자가 진심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참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수 없이 노통을 향해 인신공격을 감행했고 많은 어록을 탄생 시키기도 했었죠. 그 중에 하나가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서 어쩔 수 없이 봉하를 갔을 수도 있지만 박근혜의 선거진영의 아이디어를 야권이 배우고 이런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듯 합니다. 참여정부 말기 노통이 중임제를 들고 나왔을 때도 이 여자는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현재는 찬성론자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한국의 정치판,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먹고 사는 인간들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난 시절 노무현이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쓰레기들한테 당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한숨 밖에 안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진은 아메리카노 같은 쓰잘데 없는 소모전이나 일삼으니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제발 브레인 좀 업 그레이드를 해 주시길 바랄뿐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PS: 글을 올리는 동안 미국 정보기관의 부정부패를 다루어 충격을 주었던 영화 'Enemy of the State'를 만들었던 토니 스캇이 자살했군요. 안타깝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아메리카노 한잔 하면서 감동을 맛 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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