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상사 밑에 뛰어난 직원이 있듯이, 훌륭한 기자는 그의 가치를 알아주는 상사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기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위선에서 무시 해 버린다면 기자의 존재가치는 상실되어 버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잘못된 정보로 주입되어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조중동의 폐해를 매일처럼 목격하듯, 정권을 교체할만한 큰 이슈가 있음에도 선정적인 물타기 기사로 매일처럼 도배된다는 사실이다. 정권에 기생하는 언론사주의 부끄러운 행태를 우리는 보고 있으며, 그것이 옳든 그르든 판단은 우리가 해야 함에도 올바른 정보의 선택권 조차 우리에겐 오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74년, 미국의 37대 대통령 리차드 닉슨을 사임에 이르게 만든 워러게이트 도청사건은 언론인의 사명과 역할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워싱턴 포스트 두 기자의 뛰어난 활약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세상 밖으로 나오기는 힘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deep throat 로 일컬어지는 익명의 제보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언론과 정치는 거듭된 성장을 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과연 우리나라 언론도 제 역할은 하는지 혹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는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점에서 이 영화 ‘All The President's Men’ 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대통령의 참모들이 그의 연임을 위해, 반 베트남 전쟁을 정책공약을 내세운 민주당 선거본부가 있던 워러게이트 호텔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다가 우연찮게 경비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면서 이 사건은 시작이 된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절도사건이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의 취재에 걸리게 되고 경력이 일천한 밥을 걱정한 편집부장 제이슨 로바드(밴 브레들리)의 결정으로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만)이 합류하게 되면서 언론의 칼날은 서서히 백악관의 심장부로 향하게 된다.
특종은 제보도 중요하지만 편집부의 독립이 보장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뛰어난 기사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또한 잘못된 사회정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만일 편집부장인 제이슨이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회피했거나 권력에 굴복하였다면 이 중대한 사건은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현 정부가 진실된 사실을 외면한 채 허위사실로 국민을 현혹시켜 역사를 후퇴시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영화가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밥과 칼이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기사를 내 보내려고 할 때 편집부장 제이슨의 냉철한 판단과 제어가 없었다면 허위기사 정도로 묻혀 버릴 수도 있었다. 제이슨은 이미 존슨 정부 때 FBI 후버국장에 대한 기사로 공화당에서 기피하는 언론인이었고, 존슨 정부가 자신을 허위기사나 싣는 기자로 만들기 위해 후버를 연임시켰다는 사실을 명예처럼 여기는 훌륭한 언론인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 편집부장으로 있기 때문에 칼과 밥의 능력이 인정되었다는 것이고 그만큼 진실을 위해 기자가 자신의 명예와 목숨을 담보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된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을까?
데스크에 앉아서 편하게 남의 기사나 베끼고, 힘있는 자가 좌지우지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기사를 감추고, 다른 의도된 혹은 기획된 사건으로 다른 사건을 묻어 버리고, 돈으로 기사를 주고 팔지는 않는지 분명 반성해야 할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독재시대에나 가능한 일이 민주주의 정부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역사를 기만하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활약으로 미디어의 정치 간섭이 더욱 더 강력해진 계기가 되었고, 미국의 부패한 정치가 줄어 들었으며, 언론의 표현자유도 그만큼 신장했다. 물론 우리도 양심 언론인들의 피와 땀으로 귀중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데 이바지한 것도 역사적 사실이지만 언론인의 순기능 보다는 언론사주만 배부르게 발전한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들이 현재까지도 정치권력에 기생하며 언론의 자유와 순기능을 막는 악마의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일제 강점기간 동안 기생하던 친일세력이 아직 우리나라의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부끄러운 사실은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과거로의 반성부터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몇몇 정치인들을 생각했다. 강원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엄기영 MBC 전 사장의 예를 보더라도 도대체 언론사의 인사구조는 어떻게 작동하길래 저렇게 허약한 사람이 대표가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면서, 기자의 능력보다는 배경과 인맥을 보는 것은 아닌지, 그 이면에는 우리가 한때나마 존경했던 지식인이나 언론인의 숨겨진 내면을 보면서 언론이 제대로 숨쉬면서 취재하고도 기사화 되지 않거나 숨겨주는 것이 많지 않을까 의심을 가져본다. 물론 현정권의 낙하산식 인사가 한몫 하는 것도 분명 있겠지만 한때나마 존경했던 그들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회의 순기능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운찬의 경우만 해도 대선주자로 반대했던 노무현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던가?
물론 엄기영의 부정선거 개입이 낱낱이 밝혀지고 특종으로 보도된다는 사실은 분명, 정의를 중요시하는 훌륭한 기자들이 있다는 것이지만, 언론사 사주나 대표의 방향대로 편집이 된다면 과연 정의로운 기자가 몇 명이나 숨쉬고 버틸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현재도 시사 프로그램은 사라지고 국민을 선정적으로 현혹하는 연예 프로그램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폐지되는 프로그램에 반발하고 분노하면서도 시간이 지나 버리면 금새 망각해 버리고 연예 프로그램에 환호하며 단순하게 처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엄기영의 팬션 사건이나 동계올림픽 유치 서명 명단을 빼돌려 자신의 선거에 이용한 것은 분명 워러게이트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론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막중한 사건이 아무렇지 않게 매도되고 있다는 현실이 슬프다. 만일 닉슨을 사임하게 한 워러게이트 사건이 엄기영의 부정 선거처럼 흘러 버렸다면 미국 언론 역사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을 언론과 언론인들은 분명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할 것이다.
정보의 제한적 접근과 표현의 자유가 분명 제한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기자의 특종이 아무리 뛰어나도 기득권에 기댄 언론사주의 방향대로 편집부가 좌지우지 하면 유능한 기자들의 업무 또한 위축되는 것도 사실이란 점은 인정하지만, 언론의 가치와 명예는 언론인이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후에 나는 떳떳했는데 정치 현실이 이래서 그랬다 하는것은 변명밖에는 안 되는것이다. 명예는 스스로 지켜야 되는것이고 심판은 국민이 해주는 것이다. 지금 부터라도 언론인들은 사주의 눈치를 보지말고 언론인의 명예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우리에게 희망적인것이 있다면, 소셜네트워크의 발달이라는 것이다. 페이스 북이 자스민 혁명을 이루어 내었고 현재 진행형이며, 트위터의 정보력이 현재 언론보다 더 빨라지고 있다는 긍정적 시그널이다. 물론 언론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로 상호 보완적인 기능을 갖추고 팩트에 접근한 기사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 정의의 선두에 선 언론인들이 더 자신감을 가지고 상식에 반하는 행동에 맞서서 싸울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줘야 하지 않을까? 언론이 썩었다고 외면해 버린다면 그들은 썩은 것들을 외면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곁에 정의와 진실을 지키는 훌륭한 언론이이 많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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