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의 영화세계를 들여다 보면 겨울바다, 바람, 비, 촛불, 어둠 등 과거의 상처에 몸부림 치는 여자 그리고 반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가 과거에 받은 상처로 끔직한 삶을 살아왔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Wanted and Desired” 에서도 그의 어두운 삶을 조명해 주었듯이, 유명인으로서 이전에 어린 나이에 폴란드에서 홀로 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어머니를 잃었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영화감독으로 성공 후 사랑했던 아내마저 범죄자에게 살해 당했던 그의 과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유명인이면서도 미국 내에서 소수인종으로 살아가면서 느꼈을 소외감은 그의 뇌에 많은 상처로 기억되어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로만의 이런 증오와 상처가 ‘The Ghost Writer’ 에도 잘 나와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 칼라는 거칠게 표현되는지도 모른다.
그는 1977년에 미성년과의 성행위로 미국 정부에 의해 아직도 수배자 명단에 들어 가 있다. 로만은 사법부의 농간에 희생 당했다는 생각으로 다음 재판을 거부하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로 잠적해 버렸다. 물론 잭 니콜슨 집에서 미성년자 모델에게 약물을 주고 성행위를 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지만 언론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길 즐기는 정치적 사고를 가졌던 재판관으로 말미암아 충분히 억울한 면도 있다는 것이 그의 프랑스 망명 동기일 것이다. 재판관은 이미 90일간의 형을 마치고 나온 로만을 인기유지를 위해 다시 법정에 세웠고, 미국 사법부의 공무원으로서는 해서는 안될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얼굴 공개와 기자나 배심원과의 접촉 등 위법을 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훗날 로만측 변호사나 기소를 했던 검사도 이에 동의를 했고 잘못된 재판이었다고 진술을 했었다.
하지만 미국정부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2009년에 스위스에서 체포하여 미국의 법정에 세우려 했고, 로만의 지지자들은 구명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이 영화를 완성하게 된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영화가 끝난 후 미국이 왜 그를 체포하려 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나의 개인적인 음모론 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페어 게임’이라는 영화에서 보듯, 정보부의 조작된 정보가 인류에 얼마나 큰 재앙과 파멸을 불러 올 수 있는지 보여 주듯이 이 영화도 미국 CIA 정보기관의 음모를 그렸다는 것이다. ‘페어 게임’은 이라크 전쟁의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면 ‘The Ghost Writer’는 픽션이라는 것의 차이일 뿐이다. 그만큼 로만이 미국을 향한 증오가 얼마만큼 대단하고 그의 뇌에 각인된 상처와 고통이 큰지를 보여준다.
‘The Ghost Writer’라는 용어는 대필작가를 뜻하는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유령 작가’로 상영 되었던 것 같다. 10년의 영국 수상을 지낸 아담 랭(피어스 브로스넌)이 퇴임 후 자서전을 집필 중 대필작가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이 영화는 시작된다. 시작은 곧 폭풍이 몰아쳐 올 것 같은 영화 ‘Sutter Island’의 음산한 바닷가 장면과 비슷하다. 전 작가의 죽음으로 고스트(이완 맥그리거)는 친구의 소개로 지원을 하게 되고, 미국의 어느 섬(지명은 안 나오지만 뉴욕이나 보스턴과 가까운 것으로 나온다. 촬영지는 로만이 미국에 입국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은 아닐 것이다)의 아담 랭의 자택에서 보안을 이유로 제한적 집필을 하게 된다. 랭의 비서인 아멜리아(킴 캐드롤)의 지시를 받아야 하며, 랭의 처인 루스(올리비아 윌리암스)의 견제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미국정부의 비호아래 철저히 보호받고 있는 전임 영국 수상의 자택이기 때문에 물론 경호원들의 감시도 받아야 한다.
어느 날, 고스트가 머무는 숙소에 괴한이 들게 되면서 랭의 집으로 숙소를 옮긴 그는 전임자가 사용했던 비품을 접하면서 의혹을 가지게 되고 이것을 풀어가는 구조가 이 영화의 줄거리다. 영국 수상을 지냈던 아담 랭은 총리시절 미국 CIA에 이라크 포로를 넘기면서 고문을 자행하였던 사실이 들어나 후임 수상과 유럽의 전범재판소의 견제를 받지만 미국의 비호아래 제한적 삶을 살아간다. 아담 랭을 보면서 토미 블래어가 생각났던 것은 왜일까? 원래 유명인이 자서전을 쓰게 된다는 발표 하나로 자서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곤경에 처해질 수 도 있기 때문에, 검은 커넥션 등 많은 인물들의 견제를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그렇게 살벌하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고민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영화나 그 외 많은 현실적인 기사를 보면서 말이다.
고스트(대필작가)는 랭의 자택과 주변을 오가면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의혹과 전임자가 남겨 둔 랭의 대학 때의 사진, 알 수 없는 전화번호 등을 접하면서 의혹 보다는 신변의 위험을 감지한다. 아담의 처인 루스의 유혹에 잠자리를 가진 후 죄책감에 도망치듯 자택을 빠져 나오면서 차량의 GPS는 뉴욕(혹은 보스톤) 어딘가의 장소를 계속 안내하게 되고, 자서전 대필 전임자의 죽음이 무기생산업체와 CIA의 커넥션과 연결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릴 영화라는 것이 감시를 벗어나면 또 다른 감시를 받게 되지만 의혹이 신디게이트의 몸통을 향할 때 죽음을 맞이 하듯이, 비로서 전 영국 수상 아담 랭은 사살 당한다. 미국, 영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검은 커넥션이 드러나게 될 때 묻어 버리듯이 이 영화는 끝나가지만 반전이 일어난다. 검은 커넥션이 자서전의 내용을 애타게 찾았던 의문의 비밀이 비로서 밝혀졌을 때, 아담 랭의 부인 루스는 그와 결혼하기 전부터 CIA 정보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고 대필작가인 고스트는 누군가(CIA) 로부터 차에 들이 받혀 살해 당하며 이 영화는 끝난다. 진실을 알면 죽음을 맞이한다는 어느 스파이 영화나 마찬가지로.
로만 폴란스키는 이미 1994년에 ‘Death and the Maiden, 진실’ 이라는 스릴러 영화에서도 검은 권력에 대해 고발한 적이 있었다. 그가 어릴 적부터 겪어왔던 상처와 고통의 경험으로 검은 권력의 파멸 없이는 사회정의가 살아 숨쉬지 못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진실이라는 영화에서는 남미의 어느 나라로 표현 했었지만 독재 권력에 대항한 운동권 학생으로 성고문을 당한 파올리나(시고니 위버 )를 내세워 권력의 힘이 약자를 어떻게 유린 했었는지 보여주었고, 이 영화에서도 루스는 아담 랭 전 수상의 부인이며 CIA 정보원이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어쩔 수 없는 결혼으로 살아 오면서 영국의 정보를 미국에 팔아 넘기면서 느꼈을 고통을 보여주므로 파올리나아 루스의 과거는 권력에 고통을 당했던 인물로 일맥상통할지도 모른다.
검은 권력은 약자가 진실에 접근하려 할 때 뿌리치는 습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만큼 상식적인 사회는 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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