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서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토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의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토론주제와 상대방의 예상 논리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중앙일보 논설의원 김진의 경우는 토론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토론주제 준비 및 성실한 태도와 겸손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상대방의 말은 듣지 않으려는 자세, 상대방을 힘과 목소리로로 제압하려는 태도로 일관 했습니다. 억압으로 이기는 사회구조는 분명 잘못된 사회라는 것입니다. 따귀라도 때리고 싶은 불손한 태도였습니다.
나꼼수에서 분명히 안철수, 곽노현에 대해 다루었음에도, 나경원에게 출연제의를 했음에도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전혀 나꼼수를 듣지도 않고 토론을 준비했다는 것이고, 시민패널의 질문 조차도 이해를 못하는 언론인 김진의 참모습을 우리는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편집권이 독립되지 않은 우리나라 언론의 무능한 모습이고, 능력이 없어도 언론사주나 상사에게 잘 보이면 출세할 수 있는 획일적인 문화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였습니다..
열폭한 김진의 모습을 보면서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사회자의 진행이 감동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태껏 백토를 보아왔던 일인으로서 사회자 보고 토론방식에 대해 직접 지시하고 가르치려 드는 패널은 처음 봤습니다.
각설하고.
나꼼수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작한 백토는, 사회자가 시작하면서 김진에게 나꼼수 현상이 새로운 상징물인지, 흐름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토론 내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문화라는 말로 이어갔는데 SNS 자체를 이해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에 얽매여 있는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토론에서 상대방의 논리에 대해 혹은 주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토론 시작부터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자극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앞서 말씀 드렸듯 스스로 덫을 만들고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즉, 자폭의 길로 접어 들었다는 것이죠.
김진이 발언한 나꼼수의 긍정적인 측면은
1. 풍자의 영역을 넓혔다.
2. 정치적 소재의 확장을 넓혔다
3. 형식도 자유로운 점이 많이 추가되었다.
부정적인 면은
1. 사실관계
2. 비평의 대상이 편파적이다
김진은 70% 또는 80% 정도 나꼼수를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수구들의 특징중에 하나인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이 좀 된다 싶으면 이념적으로 몰아가는 못된 습성이 있습니다.
즉, 나꼼수는 핵심적인 결여를 가지고 있고,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여론이 많고, 법률적으로는 소송도 당하고 있고, 비평의 대상이 매우 편파적이어서 진보좌파적인 매체라고 했습니다. 그 점이 정청래로 하여금 시작부터 조작언론집단에 대한 융단폭격의 서막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정청래가 누굽니까?
참여정부 말기,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들이댔던 인물이니 상대방과 말로 싸워서 결코 질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과거와 때로는 말을 가리지 못하는 정청래의 성격 때문에 많은 안티를 가진 정치인이기도 합니다만. 지난 총선에서 강용석 진영과 조작언론집단의 허위사실 유포로 낙선한 안타까운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그가 김진에게 바로 꺼낸 카드가 광우병 촛불시위 때, 중앙일보 기자가 미국산 수입 쇠고기 취급 식당내에서 손님 역할까지 했던 유명한 조작사진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김진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토론의 흐름을 잃어버린 채 논리가 산으로 가고, 토론주제와는 상관없는 김정일과 천안함 발언 등 궤변이 튀어 나오면서 인간이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이란 사실을 입증 하더군요.
풋볼게임에서 아무리 최강팀이라도 결정적 실수(Turn Over) 한방이면 게임을 날려버리는 경우는 많습니다. 구기 종목뿐 아니라 기록경기인 피겨스케이팅에서도 동작 하나 실수로 흐름을 놓쳐 게임을 망치는 경우는 김연아를 지켜봤던 우리가 많이 봐 왔을 겁니다. 김진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초반부터 자신이 만들어 논 덫에 스스로 걸려들어 토론이 끝날 때까지 절제와 조절을 하지 못한 채 스스로 망친 게임이었습니다.
표정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을 포커페이스라고 합니다. 상대방에게 표정이 읽힌다는 것은 게임에서 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겠죠. 사실 정청래가 보여 준 중앙일보의 조작사진은 가벼운 스트레이트 정도였지 한방에 기절시킬 크로스카운터 펀치도 아니었고 훅도 아니었습니다. 가볍게 넘길 사안을 그가 지나치지 못한 것은 인격이 그 정도 그릇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명박과 대담토론까지 진행했던 김진의 경력을 따지고 봐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언론이 사과를 했던 과거의 일을 가볍게 넘겼다면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페이스조절 실패로 결국은 정청래에게 반격의 예를 든다는 것이 중앙일보라는 커다란 나무에 잎사귀 하나 띠어 가지고 흔들면서 선동하고 매도한다는 본질에 벗어난 유체이탈 화법으로 빗나가는 크로스카운트 펀치를 날립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친일파 청산 논리를 이어갑니다.
수구들의 역사의식이 대단히 잘못된 점은 잘못한 것은 있지만 잘한 것도 있다라는 논리입니다.
과연 그런 논리라면 프랑스, 독일의 역사청산이 그렇게 이루어졌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자 봅시다. 김진은 조중동이 산업화 역군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에 대단히 기여했음에도 한 순간의 잘못을 가지고 나쁜 언론으로 매도한다는 것은 잘못 된 것이 아니냐 주장합니다. 위에 언급 했듯, 이 논리가 대단히 위험한 점이 히틀러도 영웅이고, 전두환도 영웅시 해야 된다는 논리라는 것입니다.
역사청산,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는 자들이 단순하고 수준이 낮다는 김진의 망언은 국민을 바보나 노예로 여기는 것이고, 조중동 등 기득권은 엘리트 집단이기 때문에 대대손손 특권을 누리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고로 진보개혁 민주세력에 대해 촛불난동이니 경박한 인터넷 문화라는 말을 마구마구 쏟아 냈다고 보는 것입니다.
김진은 미국 워싱턴 특파원까지 역임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토론 내내 주장하고 역설한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타임즈 등 선진 언론의 예는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미국언론은 편집권독립이 보장된 것을 간과한 채 세계적으로 유수한 언론과 함께 묻어가려는 모습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망상가의 모습을 보였고 아 이것이 대한민국 언론의 수준이구나 하는 가증스런 모습을 봤습니다. 도대체 그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올바른 참 언론의 모습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직장상사나 고위공무원 술 접대나 주고 받고, 골프나 치러 다닌 건 아니었는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의 대표적인 오보사례를 들면서 언론의 순기능인 닉슨의 사임을 불러 온 워러게이트(http://j.mp/rInNx0) 사건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습니다. 쉬쉬하고 싶었던 내곡동사저 때문이었을까요? 이 점을 정청래가 예를 들어 대응하지 못하였던 것이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Jimmy’s World 지미의 세계’ 오보사건은 '제인 쿠크' 라는 기자가 자신의 유명세를 위해 단독으로 조작한 기사였고 1980년 풀리처 상까지 받았던 워싱턴 포스트의 대표적인 오보사건이었습니다만 죄송하게도 조중동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안입니다. 지난 참여정부시절 조중동이 벌인 폐악질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고, 관심법, 독심술로 기사를 써대는 조중동을 어찌 능가할 수 있겠습니까?
워싱턴 포스트 사회부 초대부장은 영화 ‘음모자 The Conspirator’ (http://j.mp/uUgvHF) 에서도 변호사로 나왔지만, 링컨 암살 공모자들 중 들끓는 여론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사회정의를 위하여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의자를 변호했던 프레드릭 에이컨이었습니다. 그는 이 재판 이후 회의를 느낀 나머지 언론사에서 사회정의를 찾으려고 변호사를 접고서 워싱톤 포스트 초대 사회부장을 맡았던 유명한 인물입니다.
김진의 논리는 미국의 성숙한 시민은 워싱턴 포스트가 잘못을 했더라도 비난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성숙하지 못한 국민이기 때문에 조중동을 비난한다는 논리입니다. 이해 되십니까? 웃습니다.
자 그리고 김진은 바로 장렬하게 자폭하는 발언을 합니다. 뜬금없이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으로 낙선했다고 정청래를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지난 총선에서 강용석의 지지세력과 조작언론집단에게 허위사실로 희생된 정치인이라는 사실만 인정 했더라도, 최소한 허위사실 유포했던 문화일보가 재판에 패소한 사실만이라도 알거나 인정했더라면 자폭의 덫에 걸리지도 않았고 평상심을 유지해 나갔을 것입니다만 팩트 즉, 진실을 외면합니다. 그리고 정청래에게 정치인생을 걸라는 예의 없는 협박 발언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미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인지 사회자에게 토론의 방법까지 제시하는 엘리트의식(?)을 드러냅니다. 토론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비판해야지 비난하고 강요를 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설명 드렸습니다만 수구들의 전형적이고 상습적인 태도인 강요를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언론시장의 7, 80%을 차지하는 조중동이 조작언론집단이란 것쯤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조중동의 편파적이고 왜곡된 언론보도가 나꼼수의 인기로 이어지는 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토론을 이어가니 김진의 논리는 산으로 가고, 바다로 가는 열폭성 발언이 된다는 것입니다.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도 도덕성이 결여된 영혼 없는 아이가 정봉주에게 도덕적 가치를 들이대는 발언을 보면서 애처롭게 느꼈지만 적어도 언론인이고 대표적인 언론의 논설위원이라는 자가 그 아이보다 못한 논리로 백토에서 답변할 때의 모습은 가엾은 우리나라 언론의 현주소를 목격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정청래의 스트레이트는 좋았습니다. 상대방 패널이 자폭한걸 확인했다면 “너는 열폭해라 나는 논리로 이해시키겠다” 라며 페이스를 조절 하고 즐겼어야 했는데, 지난 총선이 그에게도 큰 상처였나 봅니다. 너무 급했습니다. 아마 이점이 진중권의 관전 포인트에서 깎였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김호기 교수가 정청래의 팔을 움켜 쥐었겠습니까?
진중권이 김진에게 별 4개를 주고 정청래에 1개를 주었다고 SNS는 난리입니다.
나는 대중이 좀 더 여유로웠으면 합니다. 진중권이 김진을 존경해서 별 4개를 주었겠습니까? 반어법일수도 있고 페이스조절을 하지 못한 정청래를 다독일 수도 있는 것이겠죠. 제발 비논리적이고 비생산적인 것 가지고 서로 소모적인 논쟁으로 싸우지들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중권은 진중권대로 가치가 있고 정청래는 정청래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죠. 서로 각을 세우고 몰려 다니면서 그러지들 마세요.
며칠 전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정봉주와 마찬가지로 정청래도 좀 calm down 하는 기술을 습득한다면 보다 더 좋은 정치인으로 거듭 날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만...
저는 정치인을 지지하면서 대세를 따르는 자 보다 대의를 따르는 자를 존경합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와 달라졌겠지만 정봉주와 정청래의 아쉬운 점은 깊이 있는 행동과 정치철학을 우리에게 보여주면 원이 없겠습니다. 국민의 여론 즉, SNS에서 시민과 소통하면서 진정한 정치인으로 거듭나려고 하는 점, 우리 대신 가려운 곳을 긁어주려다 보니 경박하다는 말까지 듣는 것도 인정합니다만 때론 정치인은 기다릴줄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정봉주나 정청래는 우리의 가치이고 정치사에 한 획을 긋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페이스를 좀 더 조절하고 절제하는 기술을 더 늘렸으면 합니다.
백토에서 보듯이 수구들, 조중동이 변하리라 생각하는 상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검찰과 마찬가지로 개혁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김호기 교수의 말로 끝 맺으렵니다.
“나꼼수는 기성언론이 투명하거나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지 못해서입니다. 나꼼수 현상은 단순히 진보 보수의 대결구도로 해석할 수 만은 없습니다. 오래 전 것과 새로운 것이 격렬하게 교차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엘리트적인 것에서 시민중심주의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나꼼수의 현상은 집단지성의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꼼수에는 새로운 언론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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