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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democracy

The change up-유시민의 끝장토론





며칠 전 CNN에서는 당신의 주위에 가까운 친구는 몇 명일까라는 미국 내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숫자가 80년대의 3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는 것인데 과연 당신의 삶 속에는 몇 명의 죽마고우가 있을까요, 만일 없다면 당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각자가 가진 꿈과 사고는 다릅니다. 야망도 다르고 욕심도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사회입니다. 그러면서 행복하고 슬프고 상처 받았을 때 당신과 함께 웃고 위로해 줄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이 삭막한 사회, 정글과도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살아가는 당신에게 위로해줄 친구조차 없다면 끔찍하겠죠.

 

코미디 영화 체인지 업, The change up’ 을 보면, 가장이면서 로펌에서 잘나가는 친구와 무슨 일이든 쉽게 포기하는 삼류배우 친구가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 어쩔 수 없이 뒤 바뀌면서 처음은 불편했지만 각자의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깊은 속을 알 수는 없기 때문에 불편한 것도 당연히 있겠지만 왜 그렇게 살아야 했을까 반성하고 되돌아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삽니다. 누구에게? 당연히 가까운 친구이겠지요. 다른 영화 끔직한 상사, Horrible bosses’를 보더라도 죽마고우인 3명의 친구가 자신들을 괴롭히는 상사를 각자 죽이기 위해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좌충우돌합니다. 사실 코미디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웃음과 행복입니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고, 고민,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으니 그것만큼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장르도 없습니다만 웃음보다 실패와 받은 상처만 생각하며 살기에는 너무 짧은 것이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이 두 영화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분명한 메시지는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인생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지긋 지긋한 정치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각설하고.

 

어제 저녁 오랜만에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 유시민을 봤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좋아하는 건 자신이 가진 지식을 대중에게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젊은이들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환호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가진 지식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 한다면 상대방을 설득할 힘도 없는 궤변론자가 됩니다. 다만 안타까웠던 것은 오랜만에 본 유시민이 가끔 패배주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고 좋게 생각하면 지난 두 번의 선거 실패가 그를 더 겸손하고 성숙시켜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럽니다.

 

입이 가볍다. 올바른 말을 싸가지 없이 한다. 탈당 전문가다. 등등 아직도 팩트 보다는 마타도어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정치계에 입문하여 두 번의 성공과 두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그를 싫어하는 집단은 그의 실패한 면만 보고, 믿고 싶어 하는 것이겠죠. ,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믿고 싶지 않는 현상이랄까요? 하지만 이런 쓰레기들이 참여당 내부에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최근 그가 주도했던 두 번의 선거가 참여당이 주도권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야권연대에 유리한 룰을 선점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유시민의 욕심으로 패배 했다는 안티세력의 끝없는 공격성 마타도어는 수그러지지 않겠지만 사실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허위사실인지 다 압니다.

기존정당과 참여당의 다른 점이 상, 하향식 공천제도임에도 대중이 아직 모른다는 것은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나 참여당원의 소통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깊이 반성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점은 민주정당구조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소통의 방식을 이야기 하는 것임에도 대중이 아직 모른다는 것은 반대편과 소통의 부족에서 오는 원인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유시민을 지지하는 세력이 안티세력과 마찬가지로 믿고싶어하는 것만 보고 있다면 그들과 다를게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유시민이 백지연 끝장토론에서 주장한 맹점은 세 가지였습니다.


 

야권대통합, 한미 FTA, 진보

 

첫 번째, 진보 또는 야권대통합 문제에 대해서 기존정당이 서로의 차이만 찾을게 아니라 다른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최대공약수를 찾아 공존할 수 있는 차이를 찾아 상생하자는 말이 핵심이었습니다. 정치, 외교철학도 없고 도덕성가치 조차 없는 현정부를 심판하는 것은 역사적, 시대적 소명입니다. 그런 점에서 유시민의 개혁당, 그리고 열린우리당을 소멸시키게끔 만들고 탄생했던 민주당의 전신인 통합신당을 탈당했던 전력으로 패널들의 비판대상이었던 정치역정을 그는 실험정치로 생각지 말고 도전정신으로 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20대 패널들이 유시민의 가치에 대해 혹은 그의 삶의 과정에 대해 질문을 할 때는 보다 더 많은 공부가 있어야 함에도 잘못된 정보의 인용과 황당한 질문이었습니다. 잘못된 질문은 또 다른 허위사실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미디어의 위력만으로도.

 

두 번째, 그가 항상 주장해 왔고 진보세력으로 부터 비판 받고있는 신 자유주의정책 즉, FTA를 찬성, 반대 한다고 개방에 찬성, 반대 하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과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하는 사안이 달라도 이 비준 동의안은 부결시키는 것은 옳다는 주장입니다. 보태서 반대 이유가 자기와 다르다고 다른 세력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의 사고에 반대하던 세력에게는 꽤 설득력 있던 말이었습니다.

 

그가 주장한 한미 FTA 반대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1.     현정부와 참여정부와의 차이점인 쇠고기수입 연령문제, 자동차 관세의 문제

2.     시대 환경의 변화

3.     우리가 몰랐던 것 즉, 미 의회에서 통과 된 한미 FTA이행법안 내용이 미국은 주법(State Law)밑에 있지만 우리나라는 국내법과 동등한 지위로 말미암아 서로 다른 법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기본적으로 통상개방에 우호적이었다는 점은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만 우리나라가 현실적으로 직면한 사실적인 문제 즉, OECD 국가 중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90%)이기 때문에 (일본의 경우에는 20%에도 미달) 이 현실이 맘에 들지 않아도 무역전쟁은 피할 수 없다는 것과 현정부 같이 토건사업에 투자하기 보다는 서, 북유럽처럼 인적 투자, 복지지출, 건강투자에 많은 투자를 해야 된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자신이 일인 미디어인 SNS시대에는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에 각자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말 입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다면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자기편이라고 무조건 편파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반칙이 통하는 세상을 거둘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생전에 말씀하신 '약자를 배려하고 반칙이 통하지 않는 상식적인 세상'이란 유시민이 말한 함께 살자 남을 돌아보자,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라는 말과 일맥상통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끝장토론내내 우리를 실망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강의를 지켜 보았거나 들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수긍할 것입니다. 그래서 유시민이 진중권과 다른 점은 잘못된 것은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진 지식을 활용해서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쉽게 설득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한미 FTA를 현재 반대하는 논리는 대세에 밀려 반대론자가 된 것은 아닌지 하는 대중에게 꽤 설득력 있었습니다.

 

끝으로 가슴에 깊게 와 닿았던 말은 어느 패널의 선전 선동이란 부정적인 질문에 대해서,

 

선전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고 선동은 용기를 전염시키는 것이다. 군사독재시절에는 진실을 알리는 것이 범죄였고, 용기를 전염시키는 것이 감옥에 가는 이유였다. 지금도 일부 그런 거 같다.” 였습니다.

 

현재도 노무현주의자들은 노빠로, 유시민 지지자들은 유빠로 통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참여정부를 함께했던 이들의 주장을 대변하면서 그들의 공과를 넘어 편파적인 시선으로 봐왔던 것은 아닌지 깊은 반성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내 편이 아니면 믿고 싶지 않는 것이 가장 자신의 무서운 적입니다만 직접 당해보니 그 뜻을 알거 같고 또 다른 시선을 가지는 힘도 생겼습니다.

 

정치지향점이 같은 사람들로부터 내가 허위사실로 매도를 당하고 인격살인을 당할 때 대부분의 참여당원들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도와주는 이는 몇 안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참여당원이 아니니 편 들어주지 말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일관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함에도 수구들 혹은 조작언론집단의 사고를 지닌 정치지향점이 같은 사람들로부터 매도 당할 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려 넉달이 지났지만 상처는 아물지가 않습니다. 얼마전, 한명숙 총리의 무죄판결에 저는 울기도 했습니다.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를 상처를 직접 당해봐야 안다면 그 사회는 분명 잘못 된 것입니다. 모든 사안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없는 집단 이기주의 사회구조라는 것이겠죠.

 

오히려 저를 도와 주었던 분들은 소수의 참여당원들, 안티유시민 세력 혹은 그 외의 야권세력이 저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진실파악에 많은 힘을 보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혹시 그동안 내가 뱉어냈던 글, 말들이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되돌아 보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유시민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을 뒤돌아 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분명한 점은 아직도 유시민 지지세력 중 도덕성이 상실된 쓰레기들이 안티유시민 세력을 키우는데 일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현재도 쓰레기임에도 뻔뻔하게 자신을 감추고 도덕적 가치를 외치고 있습니다만 글쎄? 그들을 아는 사람들이 과거와 같이 동조를 할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유시민의 가치를 떨어트리는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회에 살면서 자신의 틀로 강요하는 것은 대단히 나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았던 방식으로 타인을 매도하는 행동은 분명 반성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은 상식적인 것도 아니고 도덕적 가치를 상실한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앞서 내가 영화 ‘‘The change up’을 말씀 드린 것은 이 심정을 말씀 드린 겁니다. 유시민이 노무현의 정신적 경호실장이었다면, 유시민의 민주당 탈당계기를 만들어준 통합신당을 만든 김한길 전의원은 그와 대척 점에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둘이 노무현의 참여정부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만 친노세력이 유시민보다 김한길을 배척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둘의 공통점은 친노 적자가 아니라는 말을 친노 적자세력으로 부터 듣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강금원씨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이해되시리라 판단합니다.

 

내가 감히 이 말을 하는 것은 끝장토론에서 유시민이 이런 말을 했었죠. 누가 진보가 되었든 자기 사유물로 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유시민은 유시민대로의 가치가 있고, 김한길은 김한길대로의 가치가 상존한다는 겁니다. 분명한 것은 두분 다 노무현을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 했든.

 

만일 그들이 체인지 업이라는 영화처럼 서로의 삶이 바뀌어 단 며칠이라도 각자의 삶을 반성하고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된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성숙하는데 일조를 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매우 유치한 상상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점에서 참여당 말기에 통합신당으로 또는 정동영지지로 많은 안티세력을 만들었던 김한길도 소신 있는 정치인입니다. 그가 참여정부시절 실세였던 적도 없고 대선 이후 정치계를 은퇴했던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분명한 것은 당시 그가 극복하자고 했던 노무현을 지금은 유시민, 문재인 등이 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극복과 지금의 극복이 서로 다른 뜻도 있겠지만 당시의 정권재창출이나 현재의 야권대통합의 측면에서는 같은 의미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누가 더 깨끗하고 누구의 소유물이냐를 따진다면 야권단일화는 이루어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 또한 노무현을 극복해서 그의 사상을 계승발전 시켜 나가야 될 숙제도 남겨 놓고 있습니다.

끝으로.

 

다음은 김한길 전의원과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입니다. 이 말로 끝맺을까 합니다. 건승하시길!

 

한 분은 아버지, 다른 분은 형님 같았다.

김 전 대통령은 대선 때 내 아내에게 ‘신혼 신랑 빼앗아 미안하다’고 격려하시던 따뜻한 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며칠 뒤 서울 명륜동 그분 자택에서 단둘이 마주 앉았던 때가 기억난다. 담배를 권하시기에 ‘이제 대통령 되셨으니 담배는 따로 피우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허, 이러지 맙시다. 마음으로 대통령을 존경해 주면 됐지, 갑자기 담배까지 따로 피울 필요는 없잖아요’ 하시더라.

 

노 대통령 임기 말에는 나와 껄끄러운 분위기인 때도 있었는데, 그때도 만나면 서로 담배를 권하며 나눠 피운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두 분이 집권했던 10년의 성공과 좌절을 함께 겪었다. 회한이 없을 수 없다. 문득문득 그분들이 지독하게 그립다.

 

 

 

PS: 그 외 유시민 끝장토론 어록.

 

대통령에 출마하기 위해 나의 이미지를 바꾼다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더 나를 위해서 바꾸는 게 옳은 것이다.

 

존재감이 없는 참여당이 꿈은 원대하나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밖에서는 가치가 잘못되었다. 자격, 실력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현실.

 

자유로운 가운데 정의를 실천하자. 국가는 정의로운 관계가 설립될 수 있도록 개입하라.

 

진보를 자신만의 가치로 인정하지 마라. 어떤 사람의 정치적 지향을 형성하는 하나의 요인에 불과하고 누구든 우리가 수 백 만년의 진화과정에서 인류가 발전시켜 온 사회적 재능,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도덕적 본능 이것에 부합하는 사회의 변화를 이룩하려고 마음먹고 노력한다면 그 사람은 진보라고 생각한다.

 

진보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정치를 하자.

 

국가의 운명을 유전자 재조합이라는 우연에 맡기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더 쉽게 얘기하면 우리가 가진 문명적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현실을 인식하고 체제를 인정하자고 하면 빨갱이다라고 한다.

 

가장 핍박 받은 분이 무려 30년간에 걸쳐서 의심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대립이 있는 곳에 갈등을 조장하고 싸움을 붙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분열과 대립이 있는 곳에 화합과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주 노력하는 정치인만이 할 수가 있다.

한날당 식으로 하는 것은 너무 쉽다.

 

우리 삶은 귀하니까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니 무모한 도전이라도 해라.

 

모든 세대는 부모세대를 극복해야 된다. .

 

정치인들의 운명이란

여름철 부채가 계절이 바뀌면 창고에 들어가고 겨울철 난로가 봄이 오면 뒷마당으로 나가야 된다.

 

시민은 자유롭게 국가는 정의롭게

 

각자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든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