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의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1984년 다음해에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 했으니 꽤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어서 글을 써내려 가야 할 듯 합니다.
부모의 힘으로 오지 않은 힘든 유학생활, 어린 나이에 겪었던 상처, 좌절, 고통 등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누구나 자신이 살던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정착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만큼 꽤 힘든 젊은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돈 벌면서 공부하느라 수면부족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병원에서나마 잠을 실컷 잔 경험도 있었고 공부보다는 합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 등록금 마련으로 돈벌이에 우선 신경 쓰지 않았었나 후회됩니다. 차라리 정도를 벗어나 잔머리 굴리며 살았으면 삶의 굴곡 없이 편한 삶을 살았겠지만 많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부끄럽지 않은 추억을 가진 장점도 있습니다. 그만큼 뉴욕의 한인사회는 누구 하면 알 정도로 바닥이 좁은 사회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최동원을 가까이서 본 것은 90년대 초반, 새로운 도전을 위해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이고 그는 선수생활을 접고 정치인에 도전했다가 실패 후 뉴욕에서 야인생활 할 때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고국에 대한 향수병은 접을 수가 없어서 비디오가게에서 한국관련 비디오 테이프를 렌트하던 시절, 지금이야 웹사이트에서 쉽게 다운 받으면 되지만 당시는 줄을 서서 오늘은 어떤 테이프가 나왔을까 궁금해 하던 불편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료로 빌려주던 518 관련 테이프를 지인들끼리 돌려 보며 군사정권의 실체를 알았고 많은 이들이 분노하던 모습도 생각납니다. 한국으로 나가던 친구를 공항까지 라이드해 주면서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다 시그널을 못 본 나머지 급 브레이크로 차가 역방향으로 섰던 기억도 납니다.
당시 뉴저지의 버겐카운티에는 한인 비디오가게가 두 군데 밖에 없었기 때문에 퇴근 후 식사하고 편리한대로 두 군데를 다 사용했습니다. 최동원을 처음 본 것은 그 중에 한곳이었습니다. 헐렁한 옷차림에 검은 플라스틱백을 들고 나가는 그를 처음보고 주인에게 물어보니 최동원이었습니다. 그만큼 당시의 비디오가게는 한국에서 온 인기인을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가수 양희은도 자주 볼 때였으니 말입니다.
갑자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플라스틱백을 들고 어슬렁 거리며 브로드 애비뉴를 걸어가는 최동원을 보고서 아는 척을 하고 싶었습니다. 스트릿 파킹을 하고서 서로 반갑게 악수를 하고 다이너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연예인을 포함한 인기인들과 대화를 해보면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내성적이고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 의심도 많이 하지만 사귀어보면 사람을 잘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기꾼들에게 사기를 많이 당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최동원은 고시생이나 백수 같다고 할까요 해 뜨면 오늘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같이 털털하고 동네 형 같은 스타일이었습니다.
당시 뉴저지 한인타운에 식당이 많지 않았던 시절, 그와 식사를 하면서 소주를 주로 마신 곳이 지금은 횟집으로 바뀐 금호식당이었습니다. 나 또한 정치에 대해 깊은 관심은 없을 때여서 그와의 만남과 대화로 정치 사회문제에 대해 조금씩 흥미를 느낀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가 민주당적으로 부산에서 출마해 떨어져 미국에 온 사실도 몰랐었기 때문에 왜 그가 술을 마시면 김영삼의 신한국당을 증오하고, 지역감정에 대해 분노하고, 약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서로 공유하면서 관심을 가져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당시 내가 좀 더 깨어있었으면 그에게 심적으로 동지가 되어 주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런 그와의 인간관계도 비즈니스 문제로 타 주에 장기간 거주하면서 오랜 만남이 이어지지 못했지만, 이후 그는 한국으로 들어갔던 것으로 압니다. 그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그러나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의식이 깨어있는 시민이 많아졌을 뿐 한국의 사회,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이념, 지역감정, 학연 혈연으로 이어지는 횡적인 인맥구조가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홍준표, 오세훈, 엄기영처럼 자신의 이익에 따라 손바닥에 침 뱉어서 튀기는데로 보수 진보가 바뀌듯이.
하지만 그를 만나고 사회의 약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내 직원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도 책임지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은 그의 영향이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노무현의 부산시장 패배를 계기로 노무현의 가치를 연구하게 되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 한국정치의 현실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애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최동원을 만나므로 해서 부산의 노무현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가 추구하던 상식적인 세상이 바로 노무현이 꿈꾸는 상식적인 세상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현실은 대세에 따라 정치판을 움직이는 기회주의적인 인간이 있다는 것이 슬픕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는 집단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또한 도덕적이지 못하면서 자신만 살기 위해 약자를 짓밟는 기생충들이 여전한 세상에서 겉은 바뀔지 모르지만 속은 썩어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최동원과 노무현의 부산이라면 나에게도 깊은 상처를 준 곳 또한 부산이고, 사춘기 시절 학교를 빠져 나와 몇 푼의 돈을 쥐고 가출했던 곳도 부산이었습니다. 그만큼 나에게는 어릴적 부터 추억이 많은 곳이며 정신적 상처가 깊은 애증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개혁의 탈을 쓴 쓰레기들이 조중동을 욕하고 약자를 배려한다는 글을 보면 헛웃음과 함께 토하고 싶을 정도로 정신적 고통이 심합니다. 최근에는 이 쓰레기들의 박원순 옹호글을 보고 체하기까지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요? 끝까지 책임져 주지도 못하면서 자신만 살기 위해서 제3자를 팔아먹고 거짓이 들통나자 제3자 핑계를 대면서 살아가는 불쌍한 중생들 말입니다. 과연 이들이 조중동과 다른 것이 무엇이며 홍만표나 이인규와 다른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미치겠습니다. 마치 프락치 같습니다.
정말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 쓰레기들에게.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부산하늘 아래 뉴욕촌놈이 담판을 짓기 위해 혼자 새벽첫차로 내려갔을 때,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부산에서 대화는 당사자와 해야 함에도 형사를 대동하고 패거리를 끌고 나왔습니다. 그때 저는 아. 이 싸움은 내가 이긴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딱 그 순간까지만.
하지만 이번 일을 걔기로 한국에서의 싸움은 핏볼처럼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게임에서 이긴다는 진리 또한 깨닫았습니다. 어쨋든, 세상에 처음 듣는 욕이란 욕은 다 들었을 정도로 목소리 큰놈이 이기는 이 게임에서 나름대로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매너를 위해 물러섰을 때 이 놈이 감을 잡았어야 하는데 자신이 이긴 게임이라 판단하고 계속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꾸준히 자기합리화 시키면서 거짓말이 진화 하더군요. 자신이 한 거짓도 잊어 버리고 자주 번복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부산바닥을 새벽 첫차로 서울서 내려간 나에게
12시간을 기다리게 하고 만남장소에 나온 것도 결례이고
패거리 끌고 나온 것도 결례이고
형사대동한 것도 결례이고
목소리 높이고 욕하면서 공갈친 것도 커다란 결례이고
참여당원이 아니니 편들지 말라고 한 것도 결례이고
봉하에 가지 말라고 한 것도 무례한 짓이고,
보다 더 큰 잘못은 유시민의 오른팔이라면서 부산바닥에 묻어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동영상을 보고서야 그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하고 소름 돋을 정도로 몸서리 쳤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다음날 새벽 첫차로 서울에 올라와 비를 맞으며 울면서 미친놈처럼 걸었습니다. 내가 억울해서가 아니라, 상식을 추구한다는 부산참여당 놈들한테 당한 수모와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꿈이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갈등하고 괴로워서였습니다.
심지어는 미국오기 전날, 누구의 남편 될 사람이라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쓰레기들이 메시지 말 토막 낸 장난질에 속아서 협박 질을 했겠지만, 누군가의 성 정체성을 까발렸다고 확인 차 만나야 되겠답니다. 본인도 아니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남편 될 사람이 피해자 대책위원회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보고 나오라는 황당한 전화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같은 편이라 믿고 싶은 것만 믿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보는 당신들의 행위자체가 지금 현정부의 개들이 하는 짓과 뭐가 다른지 묻고 싶습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진작에 가졌어야죠. 그래서 피해자 대책위원회에서 먼지 털어서 피해가 나왔습니까?
안 나왔으면 당장 해명하고 사과를 해야지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안티 조중동을 하고 한진을 응원하면서 도덕적 가치를 언급하는 당신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역겨워 토하고 싶습니다. 뒤에서는 나와 맨션을 주고 받지 말라는 뒷담화나 해대고 지금까지도 자신이 한 행동을 숨기기에 급급합니다. 현정부를 탓하기 전에 당신들부터 고치셔야 됩니다. 어디서 약자를 배려하고 상식을 추구한다는 말을 표정 한번 바뀌지 않고 그리 뻔뻔하게 하고 살아갑니까? 이 또한 용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진실은 조직적인 행동으로 조작하면 단기간 묻어 버릴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드러납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최근에, 개혁의 일선에 있다는 이 쓰레기들이 트윗에서 나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지지자들에게 전화, 메시지로 폭언 협박하고 심지어는 누군가의 남편에게 나와의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공갈 협박했다는 망나니 행태를 접하고나서 경악했습니다. 신변잡기 연애질로 정신없어 자신의 가정도 못 지키는 이 쓰레기들 얘기를 듣고 손이 부들 부들 떨릴 정도였습니다. 자신이 그렇다고 타인까지 그런다는 끔찍한 상상.
만일 내가 이 사람을 서울여행에서 만났었다면 또 무슨 관계로 거짓말하면서 엮어 갔을지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합니다. 당시 내가 처절하게 매장당할 때 나에 대한 트윗 여론조사를 들먹이며 인격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이 쓰레기 집단들 생각만하면 분노가 치밀어 도저히 용서해 줄 수 없습니다. 직접 당해보지 못한 여러분은 저에게 화해하고 잊어버리라는 말을 쉽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당신의 뒷통수를 내려 칠지도 모릅니다. 이미 현재도 제3자를 팔아먹고 자신만 살자고 모르는척 몸부림 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법을 모르는 해외교민이라고 불법으로 형사대동하고, 고위 공직자 출신 지인 동원하여 신상 털고, 조직 동원하여 허위사실로 인격 살인한 이 쓰레기 집단들, 자신에게 구애했다고 거짓으로 헛소문 내놓고 메시지 공개하겠다 하니 잠수타는 쓰레기들, 현재까지 해명, 반성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합리화를 위해 계속 거짓말합니다. 하지만 내 절제력이 어디까지일지는 모르나 아직까지는 제3자까지 끌어들여 이 쓰레기들을 묻어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 부산. 정말 끔찍하고 생각하기도 싫은 곳.
서울에서 머문 48일간의 여행이 한 사람 잘못 만난 죄의 댓가가 이렇게 큰 것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PS: 저를 끝까지 믿어 주었던 몇몇 동지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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