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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 in New York

자라난 곳 낯선 도시.


 

자정, 어떤 이가 커피를 하자고 전화가 왔지만 나가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늦은 저녁이나 새벽에 혼자서 밤거리를 헤매고 돌아온다는 것은 참 우울하기 때문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리 따뜻하게는 보이지도 않고 서울이란 도시는 너의 중심이 아니고 나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털끝만치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다.

 

만나서 잠깐의 대화 그리고 상대방의 무례함, 배려가 부족해 보이는 태도에 실망하고 돌아올 때 내가 왜 거길 갔을까 하는 후회 감 보다는 서울의 알 수 없는 우울한 공기가 내게 스멀거리고 찾아왔다. 결국 가지 말았어야 할 곳을 내가 간 것이다. 잘 알면서 내가 선택했던 결정이다.

 

서울은 학교를 다니며 자란 곳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낯선 도시. 오랜 해외생활의 익숙함이 베어서 무례하게 보이는 도시 같다. 오전의 따스한 햇살을 느끼면 마시는 커피 한 방울도 행복해 하다가도 일상의 불편함을 마주치면 싫어진다.

 

작년까지만 해도 2주 정도는 버텼는데 올해는 불과 10일도 안되어서 실증이 나기 시작한다. 아니 짜증이 난다고 할까? 어깨를 부딪치는 것이 싫어서도 아니고, 지하철 한 모퉁이에 앉아있다가 여자의 핸드백이 얼굴을 스치는 것도 아닌, 그냥 모든 소소한 것이 익스큐스의 부족에서 오는 것으로 이해를 하려 해도 이건 아니자나 하면서 지나치고 싶어도 뭔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치밀어 오른다. 그렇다고 짜증을 내고는 싶지 않다. 내가 부족해서 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익스큐스가 아닌 일상적인 일이 내게는 낯설어서 그런 건만은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고 내게는 익숙해져 있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함께 직장생활을 했던 선배도 나의 몇 시간을 훔쳐가는데 그 정도 실례를 눈감아 주지 못한다면 나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부탁을 받고 뉴욕에서 무거운 것을 구입해다 주고 입딱고 눈감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이 상대방 중심이 아니고 내 중심이라는 것만 배우면 별로 기분 나빠 할 것도 없다. 잠깐 몇 초 동안 눈감고 후회하지도 말아야 한다. 다음부터는 아는 척 하지 말자 다짐해도 안 되는 것이 인간관계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술을 함께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는 즐겁다. 하지만 자신을 주체 못하면서 마시는 술은 상대방을 실증 나게 한다. 술을 얼마큼 마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함께 마시면서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이만큼 취했으니까 너도 이만큼 취해서 실수하길 바란다면 적당히 실수해 주는 아량도 베풀어 주어야 한다 이 도시는. 가만 놔두질 않는다. 내가 실수하면 너도 실수를 해줘야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비즈니스도 알아서 해결된다.

 

당연하다는 태도,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