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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democracy

도덕적 가치와 표현의 자유-김구라 김용민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 동안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 대한민국 사회의 도덕적 판단과 기준은 무엇이고 어디까지일까 라는 의문점을 항상 가져왔습니다. 이번 김구라, 김용민 사태를 접하면서 한가지 확인한 사실은 그때마다 사회가 요구하는 판단과 기준이 다르거나 없다 None’ 였습니다.

 

공인으로 불리는 유명인은 신적인 영역이고 그들의 말 한마디는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다는 구실로 대중의 엄격한 검열대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1950년대의 메카시즘도 항상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구실로 대중을 억압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지 자신의 입맛대로 억압하면 안 되는 것이죠. , 표현의 자유, 인간이 살아가면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국회에서 인터넷 악법 날치기 통과의 경우에서 보듯, MB정부는 소통을 하지 않고 국민을 못 살게 구느냐면서 여러분은 표현의 자유를 달라고 했습니다. 미네르바가 구속되면서 억압된 표현의 자유에 대해 검찰에 분노했고, 행정, 사법기관이 혹시라도 자신의 글을 사찰할까봐 스스로 검열하고 현정부를 원망하면서 또 다른 이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억압하고 엄격한 기준을 들이댑니다.

 

뭐 이런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기준을 들이대는 비합리적인 사회가 있을까요?

 

누누이 강조해 왔지만 집단이기주의 근성을 가진 자들의 편파적이고 조직적인 모습은 정말 무서울 정도입니다. 자신과 연관된 정치인, 직업 혹은 지역이 방송사, 언론에서 나쁜 이미지로 보여지면 열변을 토하면서 성토하고 적극 항의합니다. 모든 것을 보여달라면서 또 그러지 말라는 꼴입니다. 미국 NBC SNL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런 기준이면 미국의 모든 코미디언과 프로그램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겁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여달라는 것이죠?

 

이명박정부 들어서 더욱 심해진 물타기 이슈만 하더라도 패륜정치인들의 대형이슈가 터졌을 때 수구세력은 물타기가 필요했고 나꼼수 죽이기로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김용민을 응원했던 김구라도 연좌제로 심판하고 그의 잠정은퇴로 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곽노현 교육감의 2심 판결이 유죄로 귀결되었습니다. 총선 이후 대선구도를 위해 새누리는 일찌감치 세력을 규합하여 제거 정리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올렸던 영화 ‘Good night, and good luck’ 감상평에서도 밝혔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모순된 이런 혼돈은 마치 1950년대의 메카시즘 논쟁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수구세력이 항상 그래왔듯 표현의 자유와 도덕적 기준없이 대중을 속이고 이념으로 몰아 성공하고 있다는 겁니다.

 

총선이전부터 시작된 표현의 자유 논란과 도덕적 가치 기준의 싸움은 현재까지 진행형입니다. 다자구도인 총선은 절대 몰방할 수 없는 구도이기 때문에 야권의 각 지지세력은 서로 이전 투구하지 말고 각자의 지지 지역구에 몰방했어야 되었지만, 그들은 지향점이 같은 상대방을 깊게 상처 주면서 루비콘강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는 득표수에 이기고도 새누리당에게 1당을 헌정했습니다. 물론 흔들리지 않는 37-40%의 수구세력이 있기 때문에 새누리의 1당이 가능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쓸데없는 소모전이 적어도 투표율 상승효과에 반감을 가져왔던 건 분명한 사실이고 야권의 이전투구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사실 수구들만큼 인터넷 공간에서 악랄하고 조직적인 집단은 없을 겁니다. 포털에 올라오는 그들의 패륜적인 댓글을 보고 있으면 구토현상까지 일으킬 정도의 저렴한 글이라는 사실쯤은 여러분도 쉽게 동의할 겁니다. 수구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논리적이지도 못한 근거 없는 말로 인격살인 파도타기를 할 때는 뭐 이런 사회가 있을까 하는 절망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극성지지자들이 정치에 혐오감을 주고 있고, 빠가 까를 양산하는 모순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죠.

 

지난 여름 서울여행 때, 부산 모 정당의 패거리들에게 조직적인 인격살인으로 상처를 받았던 입장이기 때문에 이번 총선결과에 대해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사회에 요구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에 부합해야 함에도 자신의 입맛대로 편파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짓말쟁이가 다시 재 보궐 선거에서 심판 받겠다 뻔뻔하게 말하고 그들의 저렴한 어록을 받아 그대로 뉴스로 내보내는 비정상적인 언론이 자리잡을 수 있는 사회구조입니다.

 

비틀어지고, 그릇되고 반성하지 않는 사회는 전진하지 못하고 항상 제자리 걸음이거나 후퇴합니다. 도덕적 위기의 시대는 분명 맞습니다.

 

지난 서울시장 재 보궐 때, 나경원의 자위대 행사 참가에 대해 비판했던 글을 수사해 달라고 검찰에 청탁했던 나경원 남편의 불합리한 행동에 심한 분노를 드러내면서 또 다른 잣대로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억압하는 이런 모순적인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인지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깨어난 시민이란 객관적인 눈으로 사안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판단해야지 자기편이란 이유로 편파적인 행동을 일삼는다면 집단이기주의 근성의 사회로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은 진보라면서 수구와 같은 행동을 일삼고 도덕적 기준 없이 자신의 입맛대로 좌우된다면 대단히 불행한 사회입니다. 제발 깊게 생각하고 또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God)은 김용민, 김구라에게,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사회의 부당함에 항거하도록 고행의 길을 주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