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신체의 일부분 중 한곳이라도 잃게 된다면 얼마나 불편할까요? 물론 잃기전에 터득했던 소중한 추억을 버려야 하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나가야 되겠지만.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지 않아도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환경에 잘 적응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의 멸망이나 급속한 환경의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인간은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꼭 그렇게 되길 빌겠지만, 사실 인간이라면 죽음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는 없을 겁니다. 가령 50억년 후에 태양계의 소멸로 지구가 사라진다 하여도.
영화 ‘퍼펙트 센스 Perfect sense’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에게 전염병이 도는 재앙이 닥치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후각, 미각, 청각, 시각)을 서서히 상실하고 새로이 적응, 극복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우울한 영화 ‘멜랑꼴리아’와는 또 다른 긍정적인 시선으로 다루었고, 영화 ‘제5원소 The fifth element’ 처럼 인간에게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줍니다.
후각기능은 기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냄새를 못 맡는다는 것은 삶과 연결되어진 추억을 지워버리기 때문입니다. 일테면 지포라이터 냄새를 맡으면 어릴 적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든지, 샴푸냄새는 사랑했던 여인의 머리 결, 낙엽은 가을냄새, 쓰레기는 인간말종들이 떠오르듯, 냄새는 추억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듣기에는 시끄러울 수도 있지만 귀를 즐겁게 해주던 목소리를 당분간은 들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제, 나꼼수 정봉주에게 징역1년 원심을 확정하는 대법원의 기각결정으로 많은 이들은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기성언론이 보여주지 못했던 기존의 틀을 벗어난 시원한 멘트와 진행, 많은 정보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던 목소리를 상실하기 때문이겠죠.
사실 대법원의 정치성향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미 예견되던 일입니다. 현정부 들어서면서 삼권분립이 실종되고, 진보성향의 판사보다 보수성향의 판사로 채워진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정봉주의 무죄는 이명박의 유죄로 연결되기 때문에 현정부를 위해 내릴 수 있는 당연한 결정입니다.
군사독재정권시절, 무고한 시민을 이념이란 잣대로 몰아세워 사형판결을 내렸고 현재도 재심으로 억울했던 많은 판결이 무죄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아실 겁니다. 그 잘못된 판결이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만 앗아간 것이 아니죠. 일가친척, 친구들까지 연좌제로 몰아 세워 그들에게 지울수 없는 정신적 큰 상처를 주었고 취직 조차도 쉽게 할 수 없었으며,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던 역사적인 오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역사를 뒤돌아보며 반성하고 개혁을 해야 될 사법부집단이 스스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근간을 무너트리는 모습을 당신은 오늘 목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법질서를 수호한다는 사법부 수장의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를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는 것은 이미 그 사회의 도덕적 가치에 대해서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법원장의 경우를 예로 들지 않아도!
왜 이런 사태가 반복적으로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사회저변에 깔려있는 도덕성의 실종입니다. 만일 정봉주의원이 1년 형기를 마치고 이 세상에 다시 나왔을 때, 이 사회가 변한 것이 없다면 그는 좌절할 것입니다. 이젠 그의 몫이 당신에게 갔고 당신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죠.
영화의 경우처럼 인간은 위기를 겪으면서 극복하는 힘이 있다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향한 분노는 잠시일 뿐 망각하는 습성 탓에 반복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도덕적 가치가 지켜졌다면 애초에 탄생하지 못할 정권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간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저변에 깔려있는 돈이면 장땡이라는 사고방식, 학연, 인연을 기반으로 점철된 일등주의 사고방식, 스스로 진보라고 하면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고방식 등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아무렇지 않게 사고하고 행동하면서 뒤돌아 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거짓말을 배우고 나온 것처럼 전혀 부끄러움을 못 느끼고 아래보다 위만 쳐다봅니다. 물론 강자에 대한 욕망이 인간본연의 모습이겠지만, 약자의 것까지 뺏으면서 강자로 군림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외교철학이 없는 현정부의 무능한 쇠고기 수입여파로 촛불시위가 발생했고, 현정부의 태도에 그렇게 속았으면서도 부동산으로 거금을 쥐겠다는 일확천금의 사고방식과 지역이기주의 태도로 지난 총선에서 집권당인 한날당에게 다수당의 자격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이건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총선 전, 봉하 마을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청와대로 돌격해봐야 대통령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국회를 잘 감시하세요” 라고 여러분에게 충고를 해주었지만 바로 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슈가 밥 먹듯 터지는 우리나라에서 감히 기억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개개인의 도덕성이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요원한 일입니다.
올해를 마감하면서 블러거들에게는 충격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진보를 대변하던 어떤 분이 아내를 죽이고 자살했던 사건입니다. 그러면서 그의 모순된 사생활과 허위경력, 가정사가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아직도 당신 주위에 많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이런 가식적인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정부 들어서면서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탓에 속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명예훼손으로 경찰서에 불려가 조서받고 벌금형을 받았던 분들에게는 모욕적인 변명입니다. SNS에 자신의 얼굴조차 감추면서 세력만 늘리려고 하면서 약자를 배려한다고 위선적인 행동을 하고, 그들처럼 용기도 없으면서 자기검열이란 이유로 변명하는 건 자기위선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못살면 어떻습니까?
이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면 되는 것이지 직업을 속이고 위장을 해서 많은 이들을 기만하면서까지 살 필요도 없고, 본 모습을 감추면서 살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가 어쩔 수 없이 강자와 약자로 갈렸을 뿐이지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삶은 소중한 것이고,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사회정의를 찾아야지, 자신의 일도, 자신의 가정도 제대로 못 지키면서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면 위선으로 가득찬 자기기만이 아닐까요? 바로 이런 모습들, 자신을 숨기고 남을 기만하면서까지 살 필요도 없고, 각자의 영역에서 충실한 삶을 영위해 나간다면 사회정의가 이루어질 텐데 한 순간의 욕심으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면서까지 일을 그르친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 사실 이런 말은 상대방을 의심하는 사회, 부정적인 태도로 비롯되는 것이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 눈이 객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각자의 영역에서 좀 더 객관적인 힘을 길러야 하는데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시선으로 편을 가르고 각을 세우면서 인기주의에 영합하고 대의를 거스르며 대세를 따르고 쉽게 분노하고 쉽게 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정봉주의 구속으로 주진우기자를 국회의원으로 내세우자는 구호도 봤습니다만 이건 분명 잘못된 사고입니다. 미국에서는 정치인보다 존경 받는 직업이 기자입니다. 언론은 정치와 사회전반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기성언론이 잘못되었다면 올바른 언론이 자리잡게 도와주어야 함에도 정치인이 되라고 난리입니다. 많은 시민으로부터 나꼼수가 기성언론보다 왜 신뢰를 받는지 벌써 그 이유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누가 지킬 것인가요? 우리나라 첫 번째 개혁대상이 언론과 검찰이라는 사실은 벌써 망각했습니다. 물론 기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이고 자유인입니다만 제발 언론만큼은 올바른 언론인이 자신의 영역에서 사회정의를 지켜야 이 사회가 올바로 나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Life goes on. 삶은 지속된다.
풍요로운 삶은 여유입니다. 영화 ‘퍼펙트 센스’에서 감각기능을 하나씩 잃어갈 때마다 인간은 울고, 분노하고, 웃고, 사랑하면서 극복과 적응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파괴하는 집단과 복구하는 집단으로 나뉘어 싸우면서 적응해 나갑니다. 인간이기 때문이겠죠. 개는 주인만을 따르고 주인이 알려준 단어만 기억하고 명령에 따릅니다. 물론 개도 주인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개보다 못한 인간을 개새끼라고 합니다. 그래서 도덕적이지 못한 사회는 수많은 개새끼들이 존재하고, 주인에게 충성하는 그 개새끼들이 올바른 사회를 부수고 망가트리면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삶의 가치는 매우 소중합니다.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는 타인의 삶도 존경합니다.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위선적이고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고 여유를 즐길지도 모릅니다. 한 순간의 그릇된 판단이 우리 역사를 그르쳐왔듯, 순간적인 잘못된 판단과 흥분으로 쉽게 분노하거나 타인을 강요하지 마시고 좀 더 생각하고 깊이 있는 성찰로 앞을 향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도덕적 바탕 위에!
내 블러그를 찾는 모든 이들,
새해에는 항상 건강하시고 더욱 더 즐거운 일만 생겼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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