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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Story from New York

Lion of the Desert-꿈 꾸는 혁명.

 

이틀 전 미영 함대에서 110여 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리비아로 발사하면서 중동 사태는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다. 유럽 열강 국과 아랍의 대결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 들지만, 한 세기 이전만해도 불모지의 땅으로 여겼던 북아프리카 및 중동에 유럽강국들이 다투어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이미 슬픈 역사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열강 국의 정치적 계산법은 아우슈비츠의 눈물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건국을 만들어 주었고, 반대편 팔레스타인 민족에게는 방랑의 슬픈 역사가 시작됨을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피의 역사가 점철되고 있으니.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이곳, 전략적 요충지로 불려지는 사막의 불모지 중동과 북 아프리카의 땅에 유전 개발이 이뤄지면서 그들의 삶은 유토피아를 만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슬람국가 특유의 왕정체재와 피의 혁명으로 이루어 낸 값진 대가들을 무시한 채 현재까지 독재체제를 유지해 오면서 먹을 것과 자유를 갈망하는 이슬람 국가들의 자스민 혁명으로 또 다른 역사를 적어 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리비아의 지도자 가다피는 한때 북한 쿠바와 더불어 악의 세력으로 불려지기도 했었다.

 

1911 9월 이탈리아가 오스만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리비아를 무력으로 점령하자 교사 출신인 오마르 묵타르(Omar Mukhtar, 1862 ~ 1931 9 16)가 이에 반발하여 20여 년간 이탈리아와 무력투쟁을 벌인 영화가 ‘Lion of the Desert’ 이다. 현재 리비아 반 가다피 혁명시위대가 장악한 뱅가지가 이 영화에는 자주 언급 되지만 그 당시에도 이탈리아는 트리폴리, 뱅가지등 지중해 연안도시 등을 장악만 했었지 그 외 지역은 사막의 라이언으로 불렸던 오마르 묵타르(앤소니 퀸)와 지지자들의 투쟁에 직면하여 고전하고 있었고, 이에 화가 난 무솔리니가 직접 보낸 사령관 루돌프 그리치아니(올리버 리드)가 파견 되어 오면서 리비아는 피로 물들게 되는 역사를 가지게 된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화에 반대하여 독립투쟁을 벌였듯, 외세의 간섭을 많이 받았던 리비아도 피로 물든 투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나라이다. ‘오마르 묵타르’는 리비아를 통치하는 가다피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하면서 한때 리비아를 위해 혁명을 꿈꾸었고, 성공을 했던 가다피의 혁명정신을 엿 볼 수 있기도 하다. 오마르 묵타르가 교수형을 당하고 그의 안경을 가져가는 영화 속 아이가 가다피라는 말도 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오마르 묵타르나 가다피가 리비아의 민주주의를 꿈꾸고 투쟁이나 혁명을 일으켰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리비아의 자주를 위해, 국민을 위해 보다 더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혁명을 꿈꾸었을 것이고 피의 투쟁을 벌였을 것이다. 당시 리비아를 통치하던 왕정은 무능했고 자신들과 기득권 세력만 배부르면 되었기 때문에 혁명은 필수불가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혁명은 꿈틀거릴 수 밖에 없었고 리비아는 가다피라는 혁명가가 필요했던 시기이고 오마르 묵타르를 존경하는 리비아 국민에게 그의 혁명은 꿈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다피의 혁명은 성공을 했지만 오마르 묵타르를 존경만 했지 그가 꿈 꾸었던 리비아를 위함은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체제 존립기반으로만 리비아 국민들에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혁명이 다시 피로 물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으니.

 

오마르 묵타르는 그리치아니 이탈리아 사령관의 회유를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 오로지 승리 아니면 죽음뿐이다. 다음세대 또 다음세대까지 투쟁할 것이다. 나는 내 사형 집행인 보다 오래 살 것이다.

 

그리고 교수형에 처하기 직전

 

“신이 나를 내려 보냈으니 신에게 다시 갈뿐이다”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일부 장교들이 70세 이상의 노구를 이끌고 리비아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그를 무서워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를 존경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부가 그를 잡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했는지 이 영화는 보여준다. 이를테면 이집트와 튀지니로의 도주나 원조를 받지 못하기 위해서 철조망으로 국경을 덮었던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분명 리비아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혁명가였고 그를 존경했던 가다피도 혁명의 완성을 위해 왕정체제를 무너트렸다. 하지만 배부르면 부패하는 것인가? 그렇다. 그는 자신의 독재 체제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국민을 학살하면서 이탈리아가 저질렀던 피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혁명의 완성은, 민주주의의 완성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 물론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다.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사실 혁명가를 줄거리로 한 영화를 보면 그들이 고민하는 모습을 엿볼 수는 있지만 왜 그들이 꿈 꾸었던 역사를 볼 수 없는지 여운이 남는다. 체게바라가 그랬듯.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하지 않았던 198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영화라서 긴장감 있다. 피로 물들었던 리비아의 역사를 엿보고 싶다면 한번 보시기 바란다. 사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처럼 대서사시적인 영화에는 부족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