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Killian Court 잔디밭에서 바라 본 Charles River 건너편의 보스톤
보스턴은 미국 건국 2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있는 영국에서 최초로 독립한 도시입니다.
다운타운, 박베이, 비컨힐,워터프런트, 노스엔드, 웨스트엔드, 찰스타운 등 7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곳은 미국 청교도의 본거지로, 유수 교육 기관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고 1635년에 최초의 퍼블릭스쿨의 하나인 보스턴 퍼블릭 라틴어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다음해에는 당시에는 약간 교외지역인 케임브리지에 미국 최초의 대학인 하버드대학이 창설되었는데 현재 60여 개의 대학이 모여있는 교육도시이자 700여 개의 하이테크 기업이 모여있는 경제도시이기도 합니다.
1630년, 800명의 영국 청교도가 이주해 보스턴항 지역에 청교도 사회를 형성하였고 미국 독립전쟁 후 조선업과 도시 무역의 발전하여 전후 보스턴 경제 기반을 다졌습니다.
보스턴항은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좋은 입지조건을 가진 항구로 현재도 보스턴의 중요한 수입원으로 뒷받침 하고 있습니다.
보스턴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늦은 봄(4~5월)이나 이른 가을(9~10월)로 보스턴에서는 아주 극단적인 기후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름은 습하고 무더우며(6~8월), 겨울은 춥고 비가 많이 내려 지역전체에 넓게 퍼져있는 관광 포인트들을 돌기에는 힘듭니다.
보스턴의 관광테마는 '문화'입니다.
다른 볼거리도 많지만 박물관, 미술관, 공연 등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장소가 많아 문화적인 체험을 위주로 관광하는 것이 좋습니다.
관광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Tremont St와 West St 쪽에서 가까운 보스턴커먼에 있는 여행자 정보센터에서 보스턴의 공식 가이드 북과 지도를 유료로 판매하고 있고 올드 스테이트 하우스 맞은편에 위치한 국립공원 관리공단 방문자센터(NPS Visitor Center)는 프리덤 트레일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 세세한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행하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주는 단체도 있는데 비영리 자원봉사 단체인 Traveler's Aid Society입니다.글로브 코너 서점(The Globe Corner Bookstore)에서는 여행 전문 서적과 지도들을 파는 데, 카플리 스퀘어(Copley Square)의 북동쪽으로 Boylston St 500번지나 하버드 스퀘어의 하버드 협동조합매장(the Harvard Co-op) 뒤에 위치한 Church St의 Palmer St 49번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브래틀 스퀘어에는 워즈워스(Wordsworth)라는 일반 서적과 아동 서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지만 멋진 여행관련 서적코너를 갖추고 할인된 가격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No Name restaurant on Boston(유명한 랍스터 전문)
15 Fish Pier St W South Boston, MA 02210
(617) 423-2705
보스톤의 숨겨진 역사(The Hidden Boston History) | |
보스톤 93번 고속도로를 지나다보면 동쪽의 찰스타운 쪽에 보스톤의 상징이라고 하는 벙커힐(Bunker Hill)전승탑이 보인다. 누구든 벙커힐 전투에서 독립군이 승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독립전쟁 당시 있었던 벙커힐 전투는 영국군이 수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3번의 공격끝에 독립군을 물리치고 승리한 전투였다. 그러나 승전의 대가로 너무나 막대한 손실을 입는 바람에 독립군들에게 항전의식을 고취시킨 Moral Victory(정신적 승리)가 되어서 전승탑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래는 허드슨강 하구가 목적지였는데 400마일 북쪽에 도착한 것이다. 그 때 벌써 체사피크연안의 제임스 타운을 중심으로 영국인들이 이주해서 담배경작과 무역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그들을 필그림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생소한 호칭이었고 후세에 역사가들이 부쳐준 이름이다.
독립선언서에 처음 서명한 존 행콕, 2대 대통령 샘 아담스, 폴 리비어의 무덤 한 끝에는 호오도온(Hawthorn) 주홍글씨(Scarlet letter)를 쓰게 한 장본인 엘리자베쓰 패인(Elizabeth Pain)이 아직도 묘비에 A자를 새긴채 잠들어 있다. |
Newport, Rohde Island (the Ocean State)
말 그대로 대서양에 인접하여 있음에서 유래하는 별칭으로 종종 관광객 유치에도 활용되고 있기도 함
가끔 Plantation State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Rhode Island주의 공식명칭이 'The State of Rhode Island and Province Plantations'라는 사실에서 유래함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작은 주 로드아일랜드에는 미국 최대 부호 별장지대인 뉴포트가 있다. 100 여년 전 미국의 부호들이 유럽 왕실의 궁전처럼 지은 호화 맨션들이 즐비한 휴양도시 뉴포트(Newport)는 미 역대 대통령들이 여름철 휴양지로 애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존 F. 케네디와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 곳을 ‘여름철 백악관’으로 애용했으며, 존 F. 케네디와 재클린 부비에는 1953년 뉴포트의 작은 교회 세인트 메리 처치(Saint Mary Church)에서 결혼식을 하였다.
뉴포트는 미국의 역사가 생존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종교적, 정치적인 자유를 찾아 새 땅을 밟은 퀘이커교도(청교도)와 유대인 정착민들이 설립한 이곳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의 손꼽히는 재력가들의 별장이 들어서면서 격조가 있는 관광지로 변모하였다. 또한 세계 요트의 수도로 불리는 도시로 뉴욕과는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광장의 올드콜로니 하우스와 뉴포트 역사 박물관 (Museum of Newport Chateau-sur-Mer History), 요트 박물관(Museum of Yachting), 테니스 영예의 전당(Tennis Hall of Fame), 트리니티 교회(Trinity Church),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투로 유대인 예배당, 레드우드 도서관, 학술 진흥기관, 군복들을 모아 놓은 군사 박물관 등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즐비하다.
뉴포트 맨션투어(Newport Mansion Tour): 뉴포트에 들어서면 여름에는 음악 축제가 열리고 수많은 요트들이 정박한 워터 프론트를 지나 부호들의 별장들을 구경하는 맨션투어(www.newportmansions.org) 코스가 나온다. 특히 산업혁명기의 거부 밴더빌트가의 별장 브레이커스와 마블 하우스는 수입산 대리석과 휘황찬란한 프랑스산 샹드리에, 각종 미술품으로 장식돼 왕궁을 연상시킬 만큼 당대 미국 대부호의 호화로운 삶을 짐작케 한다.
☞ 브레이커즈(The Breakers): 해운업과 철도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2세가 가족과 함께 여름 휴양차 머물기 위해 2년간 수 천명의 인부를 고용해 1895년에 완성한 별장이다. 탁 트인 대서양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13 에이커의 부지에 지은 이 대저택은 방이 무려 70개에 달하고 이탈리아에서들여온 대리석 바닥과 벽, 천정 벽 등 화려한 건축양식이 볼만하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구경하면 훨씬 흥미롭다.
☞ 샤토 쉬르 메르(Chateau-sur-Mer): 불어로 ‘바다위의 성(城)’이라는 뜻의 이 맨션은 1852년 중국 무역상을 위해 지어진 빅토리아풍의 저택으로 뉴포트의 대저택들 중 가장 먼저 지어졌다.
☞ 엘름즈(The Elms): 필라델피아의 석탄부호 에드워드 버윈드가 10에이커의 부지에 프랑스 성(城) 아스니에르를 본떠서 지은 여름 별장이다. 1901년 완공됐을 때 총 건축비는 140만 달러였으며 밴더빌트가의 별장 못지않게 유명하다.
☞ 마블하우스(Marble House): 1892년 ‘철도왕’ 밴더빌트의 손자이며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2세의 동생인 윌리엄 K.밴더빌트가 그의 부인 엘바의 39세 생일을 기념해 건축한 여름 별장이다. 50만개의 큐빅대리석을 사용한 호화 별장. 유럽의 왕궁 못지않은 대저택으로 건축비 1100만 달러 중 700만 달러가 대리석 비용이었다.
☞ 로즈클리프(Rosecliff): 1902년 네바다주 은(銀) 재벌의 상속녀 네시 오엘리치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의 그랑 트리아농을 본따 지은 맨션.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미아 패로를 위해 파티를 열던 맨션이 바로 이 곳이다. ▼
☞ 트리니티 처치(Trinity Church): 1726년 세워진 하얀 첨탑 교회에는 티파니사에서 제작한 스테인글래스가 있고, 헨델이 연주했던 오르간을 볼 수 있다(Queen Ann Square 401-846-0660).
☞ 식당: 아메리카스 컵이 열렸던 부둣가(wharf) 주변에는 레스토랑 의류, 기념품 등 숍이 즐비하다. 레스토랑 ‘블랙펄’은 보웬즈 와프에 있는 뉴포트에서 가장 이름난 식당이다. 특히 조개수프 클램차우더(Clam Chowder)가 이 집의 명물이다. 주말에는 30분∼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크라상 위 랍스터샐러드($18.50), 홍합찜($16.50) 등 대부분의 요리가 훌륭하다. 냉동 클램차우더를 테이크 아웃도 할 수 있다. www.blackpearlnewport.com. 401-846-5264.
말보로와 페어웰 스트릿 사이의 화이트 호스 테이번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선술집이다.1673년 2층 건물로 지어진 이 선술집은식민지시대 의회이자 형사법정, 시의회 장소가 되었던 곳이다. 훗날 1957년 식당으로 개조해 문을 연 이 곳은 미국의 오랜역사를 느낄 수 있다. 요트 센터가 있는 뉴포트 워터 프론트는 여름이면 음악 축제 등 각종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 워터 프론트를 따라 음식점과 상점들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강가에는 흰 요트들이 떠 있어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 로드 아일랜드
코넥티커트에서 해안을 끼고 동쪽으로 가노라면 ‘Little Rhody”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작은 州인 로드 아일랜드(Rhode Island)가 나온다. 총 면적이 1,200 스퀘어 마일 밖에 안 되는 조그만 주이지만 역사적으로나, 잘 보존된 원시림이나, 요철이 심한 해안선의 경관으로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31년에 신대륙을 찾은 로저 윌리암스(Roger Williams) 목사가 매사츄세츠 만의 식민정착지에서 퓨리탄들의 압력으로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가 없게 되자 새로운 정착지를 물색하던 중 토착 원주민들인 내랑간세트(Narragansett) 인디안들이 호의로 빌려준 Narragansett만 상류의 Providence 강가에 있는 토지에 1636년 정착지를 새로 설립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섭리( Providence)”로 이루어졌다는 뜻에서 프로비덴스라고 이름을 정하고 양심의 자유와 종교적인 관용을 기본 이념으로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하였고 철저한 종교자유를 시행하였는데 이들의 이상은 1781년 미국헌법 제정 시 수정헌법 1조로 미국의 기본정치이념으로 정착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미국에서 첫 번째 유대인 회당과 침례교회 그리고 유니타리안 교회 등이 이곳에 세워졌고 메사츄세츠에서 박해를 받던 퀘익커 교도들이 이곳에 정착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가장 오래된 도서관과 공립학교와 대학들도 이곳에 설립되었다. 그리고 1776년 5월에는 뉴 햄프셔의 뒤를 이어 영국의 통치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로드 아일랜드 주는 섬은 아니지만 남쪽 해안과 함께 마사츄세츠 남부와의 동쪽 경계가 북쪽으로 깊숙이 들어 온 내랑간세트 만으로 되어 있어 동남쪽이 바다로 쌓여 있는 것이 섬과 같은 인상을 주며 옛 부터 해양 산업과 오락이 발전하였다. 처음에는 농업을 주축으로 하는 정착지로 출발하였지만 17세기에 이미 서인도 도서들과 무역업을 하는 항구도시로 번성하였고 19세기 산업혁명 시에는 산업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면서 유럽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귀금속 공예사업과 섬유산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는 Narragansett 만이 세계적인 요트 산업과 요트 경주의 중심지가 되면서 휴양지로도 각광을 받아왔다. 그래서 The Ocean State 라고 부른다.
로드 아일랜드는 북쪽의 프로비덴스와 남쪽의 뉴 포트(Newport), 두 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프로비덴스에서는 아무래도 로드 아일랜드의 설립자 로저 윌리암스(Roger Williams)의 유적을 찾아보고 그의 뜻을 기리는 것이 중요할 듯 하다.
프로비덴스 남쪽 시 경계지역에 로저 윌리암스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로저 윌리암스가 인디언들로부터 양도받은 본래의 땅의 한 부분이라는 이곳은 로저 윌리암스의 4대 손이 되는 벳시 윌리암스(Betsy Williams Cottage)가 기증한 땅에 윌리암스의 동상과 함께 동물원, 식물원, 수족관, 천체 관측소, 자연사박물관 등 각종 시설 등이 구비되어 있어 도시에 자리잡은 공원으로는 미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동상과 함께 Providence 다운타운 번화가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Pratt Street에 Roger Williams의 또 다른 동상이 서 있다. 이 동상 밑에는 유해가 보존 되어 있다고 하는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다운타운은 뉴 잉글랜드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곳이다. 뉴 잉글랜드에서 두, 세 번째로 일찍 개발된 식민 정착지로 18세기와 19세기 무역과 산업이 한창 번성하던 곳에 어울리게 훌륭한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는데 당시 영국의 빅토리아 풍이나 이태리의 르네상스 풍 그리고 식민지 특유의 건물양식 등을 함께 볼 수 있다.
로드 아일랜드의 풍부한 종교유산
로드 아일랜드에서 프로비덴스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곳이 남쪽으로 내려와 대서양 해안 연안에 자리 잡은 뉴 포트(Newport)이다. 해안이 가까워서 일찍부터 무역의 중심지로 부(富)가 모이는 곳이었고 군사활동이 활발하고 문화교류가 많은 곳으로 300 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역사에서 처음 생긴 것들이 적지 않은데 미국의 첫 번째 해군대학, 첫 번째 공공 도서관 등이 이곳에 있다.
뉴포트는 특히 비교적 식민 초기부터 잘 나가던 18세기와 19세기에 지은 공공 건물들과 특히 부자들이 지은 저택(mansion) 등, 건축물들이 눈에 띤다.
1673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White Horse Tavern 이 아직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가 하면 1739년에 건축되어 1776년 5월 로드 아일랜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등 1900년까지 주 청사로 사용 되었든 3층짜리 건물 Colony House 도 아직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부자들의 저택과 별장 들이 특히 눈길을 끄는데 많은 저택들이 당시의 모습과 가구들을 복원하고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들 저택들 가운데 1800년 대에 호화의 극치를 이룬 건물로는 1800년대 철도산업으로 큰 돈을 번 밴더빌트의 대를 이은 Cornelius Vanderbilt II 세가 여름별장으로 지은 The Breakers 를 꼽는다.
석회암(limestone)으로 지은 방 70개짜리 4층 건물의 이 저택은 19세기 미국의 건축가 Richard Morris Hunt가 튜린과 제노아에 있는 궁전을 본 따서 지은 것으로 내부는 대리석과, 석고, 스태인드 그라스, 금은 도금과 수정 등으로 장식하였다. 밴더빌트 2세는 1895년에 완공된 저택에서 반신불수된 몸을 치료하다가 4년 밖에 더 못살고 1899년에 56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미국화폐보다도 더 많은 돈을 가졌다고들 이야기 하던 그로서도 찾아오는 죽음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호화의 극치와 인간의 무상을 함께 되새기게 한다. 지금은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고 하니 한번 둘러 볼만 하다.
무엇보다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온 유럽대륙의 사람들이 미 식민지에서도 명실상부한 신앙의 자유, 국가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제공하기 위해 세운 로드 아일랜드였기에 각종 다른 종파의 교회들이 북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자리잡고 정착하였다. 그 생생한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것들을 찾아 보면서 ‘교회는 다 같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을 떨쳐버리며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로이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이곳 정착지의 첫 번째 설립자인 로저 윌리암스는 퓨리탄 극우파라 할 수 있는 침례교도로 1638년 이곳에 정착함으로 북미주 최초의 침례교회(First Baptist Meetinghouse)가 프로비덴스에 세워졌는데 1774-75년에 지은 1,200석의 현재의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에는 뉴 잉글랜드의 제일 큰 교회건물이었다고 하며 침례교회로서는 처음으로 종탑을 올린 교회로 지금도 이곳에서 예배 드리고 있다.
유대인들이 처음 미 대륙에 정착한 곳이 로드 아일랜드의 뉴포트였고 유대인들의 첫 번째 회당이 건축된 곳이 여기이다. 1620년대 스페인과 폴튜갈에서 종교재판의 위협을 피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브라질 등지로 떠났던 유대인들이 중남미와 쟈마이카를 거쳐 미국에 처음 정착한 곳이 신앙의 자유를 기치로 정착지를 마련한 로드 아일랜드로 1658년이었다. 유대인 컴뮤니티가 커지자 묘지로 사용하려고 구입하였던 대지에 1763년에 회당을 건축하였는데 18세기 미국건축의 한 표본으로 지금도 회당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유대인들의 메카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또 하나 뉴 포트에는 1699년에 건축된 퀘이커 교도들의 집회소가 자리하고 있다. 영국에서 1640년에 형성된 이 교단의 교도들 가운데는 1657년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로드 아일랜드를 향하여 영국에서 직접 건너온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촌을 마련하고 그들 나름대로의 종교의식을 행하였다. 18세기 퀘이커교가 번성하던 때에는 뉴 포트 주민의 3분의 1이 퀘이커 교도였을 정도로 이 집회소를 중심으로 번성하였으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쇠퇴하였다. 그러나 뉴 잉글랜드의 퀘이커들이 1년에 한 차례씩 모여 연차대회를 하는 등 중심 역활을 계속하였고 그 후로는 컴뮤니티 센터 등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뉴포트 역사학회의 관리하에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는데 단순함과 실용적인 퀘이커 식 의식을 위한 집회소로서의 건축양식은 일반교회 건물과는 완연히 다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International Tennis Hall of Fame)은 미국 로드 아일랜드 뉴포트의 뉴포트 카지노에 위치한 비영리 목적의 테니스 명예의 전당이자 박물관이다.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은 1880년 제임스 고든 베넷 주니어(James Gordon Bennett, Jr.)에 의해 설립된 종합 위락시설이었던 뉴포트 카지노에에 위해 운영되고 있다.
전해져 오는 일화에 따르면 베넷은 그의 손님이자 영국 근위대 장교였던 헨리 오거스터스 "슈가" 캔디(Henry Augustus "Sugar" Candy)와 내기를 했는데, 내기 내용은 캔디가 말을 타고 뉴포트의 유명한 클럽이었던 리딩 룸(the Reading Room) 클럽의 현관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캔디가 내기에서 이겼지만 리딩 룸 클럽의 운영자들은 이 내기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불같은 성격을 지녔던 베넷은 이에 화가 나 곧 자신만의 클럽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고, 그것이 훗날 뉴포트 카지노가 되었다.
20세기 초반은 뉴포트 카지노에 있어 험난한 시기였다. 대공황으로 인한 경기의 침체는 뉴포트를 요양을 위한 여름 리조트 수준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사교 클럽을 목표로 하고 시작되었던 카지노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어서, 뉴포트 카지노는 수많은 다른 위락시설들처럼 소단위의 현대식 상업시설로 쪼개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위기에서 뉴포트 카지노를 구해준 아이템이 테니스였다. 미국 론 테니스 협회(the United State Lawn Tennis Association)는 협회의 첫 번째 챔피언십 대회를 1881년 뉴포트 카지노에서 개최했으며, 이 대회는 1914년까지 지속되었다. 이때부터 테니스는 뉴포트 카지노의 가장 인기있는 서비스가 되었다.
제임스 벤 앨런(James Van Alen)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1954년 그는 뉴포트 카지노에 테니스 명예의 전당을 설립하였다. 이 시설은 오늘날 세계에 남아있는 가장 뛰어난 빅토리아 양식의 건축물 중 하나로 여겨지며, 카지노 극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은 1954년에 제임스 벤 앨런에 의해 '위대한 선수들의 성소'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에서 설립되었다.
그는 1957년 명예의 전당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잘 갖춰진 테니스 박물관 중 하나이다. 이 시설은 1954년 미국 테니스 협회(USTA)에 의해 인가되었으며, 1986년부터는 국제 테니스 연합(ITF)으로부터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55년 최초의 헌액자가 나온 이래 2007년 현재 전 세계 18개국의 200여 명의 헌액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전시물
박물관은 처음 설립된 때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기의 각종 테니스 관련 유품 및 기록물(비디오, 사진, 음성 기록, 테니스 용구 및 의상, 트로피, 예술작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소장품들은 약 1200평방미터에 이르는 박물관 공간에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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