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철의 여인, The iron lady’은 메릴 스트립(Meryl Streep)에 의한, 순전히 그녀를 위한 영화입니다. 여성 정치인을 다룬 영화여서 그녀의 존재가 새삼 부각되는 건 아니겠지만 우선, 메릴 스트립이란 이 여배우가 가진 훌륭한 연기력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나이가 64에 접어들었음에도 다른 여배우들처럼 성형하지도 않고 자기 몸매를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자기관리가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에 보다 더 열정적으로 자부심을 갖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항상 유지한다는 것이겠죠.
내가 메릴을 처음 접했던 영화는 1985년 만들어진 ‘Out of Africa’였습니다. 광활한 아프리카 평원에서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메릴의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으로 유명한 이 영화로 저는 해외에 나가 살겠다고 다짐했고, 그 해 미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한국에서 접하지 못했던 ‘The deer hunter’와 ‘Taxi driver’ 등 두 편의 영화를 미국 도착 이틀 후, 보면서 메릴과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에 감동 받았습니다.
‘The deer hunter’에서 제철소의 노동자 역으로 나온 그녀는 드니로의 짝사랑 여인으로, 크리스토퍼 월켄의 애인으로 마치 천사같은 모습의 연기를 보였고 이후에 나온 영화 ‘Falling in love’에서 드니로와 다시 연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녀의 연기력은 대중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있다는 것이겠죠.
이후, 더스틴 호프만과 연기한 ‘Kramer vs. Kramer’외에 ‘Sophie’s choice’, ‘Silk wood’, ‘Falling in love’, ‘The bridge of Madison county’ 등 그녀는 다양한 장르에 걸쳐 사회고발, 환경, 사랑 등을 주제로 폭 넓은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오스카를 열번 이상이나 노미니 되고 두 번이나 거머쥔 연기력을 제외하더라도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랑을 받는 것은 자기관리가 탁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 영화 ‘철의 여인, The iron lady’은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으로 최장기간 재임 했던 마가렛 대처의 일생과 정치역정을 다룬 스토리입니다.
미국의 정치가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당 정치로 대표된다면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두 축으로 움직입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더라도 영국의사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의원들과 각료들의 의사 진행발언 장면을 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수준과 의사당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저질적이며 권위주의적 상징물이 아닌지 느낄 겁니다. 보수가 부패의 상징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나 통하는 것이 아닌지 심한 좌절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현재 벌어지는 정치계의 굿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대처가 수상으로 재임 하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철의 여인(The iron lady)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것은 냉전시대의 유물일 수도 있지만 매일처럼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시위로 영국의 경제와 사회는 심하게 위축되었기 때문에 강경노선의 정책이 요구 되던 시대였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패권은 이미 미, 소의 양축으로 넘어가면서 해가 지지 않는 국가라는 찬사를 듣던 영국의 자존심은 무너졌고 미국의 강아지라는 비아냥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영국의 자존심을 내건 보수 강경파의 대표적 인물 대처의 등장은 여성 정치인을 떠나서 영국정치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당시의 대중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델리 그로서리 가게의 딸로 태어나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좋은 남자 데니스를 운 좋게 만나면서 정치에 더 깊숙이 빠져듭니다. 빠져 들었다기 보다는 여성 정치인이 드물었던 당시의 정치적 시대상황을 바로잡고자 온몸을 던진 여인이기도 합니다. 마가렛 주위에서 맴돌며 지켜보던 데니스가 지방선거에서 패배하여 실의에 빠진 마가렛에게 “Would you marry me?” 청혼을 하며 함께 춤추던 장면은 꽤 인상 깊었습니다.
어쩌면 정치와 결혼했을 마가렛에게 남편 데니스는 평생을 정치와 사회전반을 조언해주는 역할로 나옵니다만 그의 희생이 없었다면 위기의 시대 영국에서 출중한 여성 정치인은 나오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평생동지이자 남편인 데니스와 희노애락을 함께하고 그의 사후에도 치매에 걸린 마가렛의 유령으로 조언하고 지켜주며 위로하는 조언가로 나옵니다.
그가 있기 때문에 그녀가 있다는 것이겠죠.
마가렛 대처의 재임시 첫번째 위기는 영국의 만성적인 노조파업으로 발생한 경제위기였습니다. 신 자유주의 정책을 신봉하는 그녀의 대처리즘은 당대의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레이거노믹스와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의 괴리감으로 당시 노동자들의 원망을 샀고 현재까지도 노동당과 노조를 포함한 진보론자들로부터 내내 비판과 비난에 시달려야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그녀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았던 수상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당시는 개혁성향을 가진 좌파를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운동가로 매도할 수 있었던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권력을 이용하여 힘 없는 자들을 억압하는 그녀의 철권통치가 가능했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냉전시대를 마감하는데 한 축을 담당한 대처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릴 때 그녀의 영화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대영제국의 번영을 위해(그녀의 표현대로라면) 무차별적으로 진압했던 노조의 파업은 이념논쟁으로 치닫던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르헨티나가 도발한 포틀랜드 분쟁 당시에도 전쟁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던 경제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결단으로 전쟁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의 도움이 있었지만 만일 패배 했다면 경제가 더 후퇴하였을지도 모를 무모한 전쟁이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애국의 이름으로 벌인 이 전쟁은 성공했고 영국의 경제는 되살아나면서 11년간의 장기집권으로 이어졌던 것이죠.
영국의 위기 상황과 그녀의 삶이 현재, 과거를 반복적으로 오가면서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 영화는 진행이 됩니다. 11년의 수상 재임기간, 50여 년간 지내온 동반자적 동지관계인 남편과의 이야기, 그녀 나름대로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녀에게 좋은 평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는 냉정하고 때론 배신감에 몸서리 쳐야되는 냉혹한 현실을 늙은 여자의 넋두리로 대신하는 치매걸린 대처를 메릴 스트립이 훌륭하게 연기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작금에 벌어지는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비교하면서 봤습니다. 지구상에서 아직도 냉전의 이념이 사라지지 않은 혹은 사라지게 만들지 않으려는 수구기득세력, 대중을 억압하고 권력에 아부하며, 개혁성향의 진보론 자들을 좌파 빨갱이로 매도하는 절대 권위주의적인 우리나라의 수구기득세력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불편한 현실.
알면서도 연대하지 못하는 진보 개혁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서로 연대하지 못하면 혁명적인 개혁은 완성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더 깨끗하냐는 논쟁은 혁명이 완수된 이후에 해서도 될텐데 그렇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당장의 집단이기주의적 사고로 편을 갈라 각을 세우고 마타도어를 일삼으면서도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기편이라는 이유로 편파적인 지지를 하면서 침묵하고 밥그릇 싸움에 몰두해 있는 이들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이들은 정치에 상실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현재도...
당신이 지금 보는 것이 숲보다 나무를 보는 것은 아닌지?
당신이 지금 말하는 것이 분열을 일으키는 행동은 아닌지?
당신이 지금 하는 행동이 미래에도 확고한 것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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