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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Story from New York

Straw Dogs-집단이기주의가 폭력성을 띌 때.




별로 친하지 않은, 그저 아는 사람이 무작정 당신 집에 들어와 나쁜 짓을 하거나, 이웃에 배경이 좋은 사람이 이사 오면서 가족에게 비교, 무시를 당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왜 집안 단속을 그 따위로 했느냐부터 이 사람 저 사람 의심하고, 이웃에게 열등감을 느낀 나머지 뭔가 잘못하면 손좀 보겠다는 사람까지 대처하는 자세는 매우 다양할 겁니다. 마찬가지로 영화 ‘Straw Dogs’ 은 남의 일에 참견하기 싫어하고 지극히 소심해 보이던 인간이 이웃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울타리(가정)가 위험에 처해지자 비로서 인간내면에 숨어있던 폭력성으로 무자비하게 응징합니다. 

 

무려 40여년 전 만들어져 충격을 주었던 이 영화가 시대상황에 맞게 리메이크 영화로 다시 나오는 건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 본연의 모습은 그대로라는 것이겠죠. 특히 소셜네트웍이 발전하면서 필터링, 피드백이 되지 않아 발생하는 왜곡된 정보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도 많고 광적으로 변한 인간들이 행패를 부리기도 합니다. 요즘 사회에서 벌어지는 군상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소름 끼치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장르가 스릴이다 보니 첫번째 영화의 배경이었던 잉그랜드의 회색톤 하늘과 우중충한 풍경이 보다 더 긴박감있다는 건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리메이크 되어진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던 큰 이유도 미국 텍사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만들다보니 상대적으로 전작보다 긴장감이 느슨해진 것과 전작에서 주연으로 나온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와 영화 와일드 번치 The Wild Bunch’ 로 유명한 감독 샘 패킨파 감독의 무자비하고 파격적인 연출을 넘어서지 못 했습니다.

 

훌륭한 원작을 리메이크해서 실패한 대작영화는 무수히 많습니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영화는 감독의 시대정신과, 가치관과 철학이 중요하기 때문에 현대의 영상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흥행실패는 물론이고 대중에게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겠죠. 아마도 전작 영화를 보셨다면 약간의 테크닉만 바꾼 리메이크 영화에 실망하겠지만 리메이트작만 본다면 모르겠습니다 평가는 여러분이 하시도록. 하지만 아내역의 케이트 보스워스와 영화 '살바도', 'against all odds', 'Once upon a time in America'등에서 명불허전의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 주었던 제임스 우즈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낯선 곳을 여행하다 보면 원래부터 살던 사람으로부터 친절함과 불친절의 양면성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외지로부터 온 사람에 대한 시기, 두려움이 어떤 동기부여가 이루어진다면 폭력적으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가진 것을 내 놓을 경우 친절하겠지만 가진 것을 뺏으려 든다면 폭력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점은 정치, 사회의 다방면에서 설명을 안 드려도 쉽게 이해를 하시리라 판단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귀향한 아내의 고향 사람들은 사회에서 성공한 외지의 남자가 자신들의 여자를 훔쳐갔다는 사고로 시작합니다. 물론 현재도 지방 어디쯤에서 이런 경험을 했던 분들도 있을 겁니다. 마을사람들의 비아냥이나 조롱에도 휩쓸리지 않기 위해 주인공은 충돌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돈을 주고 집안 수리를 맡겼는데도 그들이 불편해할 까봐 화를 내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하는 남편과 그런걸 일상적으로 보는 아내는 남편을 소심한 겁쟁이로 본다는 것입니다.

 

젖은 옷에 튀어나온 유두를 보고 놀리는 인부들의 태도에 기분상한 나머지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왜 브라를 안 해서 그런 소릴 듣느냐라는 면박만 줍니다. 조신하게 지냈으면 마을사람들이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겠죠. 도시에서는 아무 일도 아닌 일이 지방에서, 특히 보수적인 지방에서는 외지사람의 언행에 대하는 태도가 각기 다르다는 것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원칙을 아는 이 남자가 그저 술에 술탄 듯 물에 물 탄듯하면서 마을사람들의 강압적 태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자 그들의 강요와 조롱은 점점 도가 심해집니다. 마치 강자로 착각한 그들이 약자에게 대하듯, 아무것도 모르는 한 아이를 두고 왕따를 놓습니다.  

 

자신은 하찮게 여기는 것들이 타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무 일도 아닌 일이라는 전제가 깔리기는 하지만 폭력성을 띄기 시작하면 매우 심각한 사태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도시에서 온 촌놈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 말 한마디가 시골사람들에게는 잘난 척으로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아름다운 여자를 훔쳤지(결혼), 신의 존재를 무시하지(자존심상처), 자신들 보다 성공했지(looser의 입장에서) 뭐 하나 싸가지가 있어 보이지 않는 이 남자에게, 일하던 인부들이 고양이를 목매달아 죽이는 결정적 사건이 터집니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인부들의 전두엽이 망가지지 않는 이상에는 내면에 숨어있는 폭력성을 숨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응을 하지 않으므로 해서 인부들의 폭력성은 갈수록 심해져 가고, 급기야 사슴사냥을 핑계로 남편을 이름모를 숲에 놓아두고 어릴 때부터 아는 아내를 집단강간하기에 이릅니다.

 

적극적인 공격이 좋은 수비다 라는 말이, 요즘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아내가 강간 당한 사실은 모른채 남편은 자신을 숲에 놓아 두었다는 이유로 인부들을 해고하기에 이릅니다. 해고하는 순간까지도 그들이 원하는 댓가를 다 줍니다만 마을 행사(혹은 첫 번째 풋볼게임) 때 다른 사람이 일으킨 오해로 인해서 인부들이 주인공의 집으로 응징하러 옵니다. 상대가 만만해 보이니 이미 결론을 내고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폭력성을 띄는 대부분의 인간은 객관적인 시선보다는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으로 의리를 내세워 힘으로 제압하려 합니다. 


인간의 심리는 묘합니다.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던 아내는 생명을 잃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 남으려고 보호하던 약자를 내쫏고 give up을 하려고 하고, 이 남자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 남자가 불량한 인부들을 다 죽이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예전에 이 영화를 보고 개인주의 심리묘사를 철저히 했다고 받아들였지만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초근성 혹은 소심한 남자가 자신이 위험에 빠지자 폭력성을 띄기 시작한다는 이해로 받아 들입니다. 물론 오래 전의 사고방식과 현재는 다르겠지만 개인주의란 이기주의와 달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약자를 괴롭히는 짓은 하지 않기 때문에 소심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Straw Dogs’ 같은 경우로 저 또한 깊은 상처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적어도 사회는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이 있어서 대응을 하지 않고 지나쳐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리라 판단 했습니다만 그것은 순전히 나의 착각이고, 실수이며 커다란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았습니다.

 
이 사회가 상처를 받고 알았다면 그 사회는 썩은 것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인부들처럼 언어적 폭력을 서슴지 않고 쓰레기 같은 행동을 할 때,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 결국은 집단 이기주의의 패악 질로 발전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아 사람이 이래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대안학교 선생, 모 정당의 지역위원장, 그를 떠 받드는 쓰레기들과 여러 여자들이 허위사실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인격살인을 서슴지 않았던 것을 이해하려면 이 영화의 폭력성과 대등 소이한 것같아 기분 더러운 추억만 떠오르게 됩니다. 

아무튼.

 

집단의 모임에서 한번 봤을 뿐인데 척보고 사기꾼인지 알았다는 쓰레기도 있었고, 자신의 가정은 지키지도 못하면서 여자를 보호 해 준다는 꽤 그럴듯한 명분으로 사회정의를 내세우던 쓰레기도 있었으며, 전혀 일면식도 없는 여자들이 얼굴색 변하지 않고 구애를 했다고 거짓말을 해대는 악취 나는 쓰레기들도 있었고 거기에 편승해서 피해자대책위원회를 만든 쓰레기도 있었었습니다.

 

나를 믿고 진실을 이야기 하던 자들은 공갈협박 당하고, 또 다른 거짓말로 인격살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입으로 진보를 외치던 자들한테. 그리고 이런 진실을 알면서도 침묵을 지키던 기회주의자들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물론 뒤로는 응원하고 지지한다고 하면서 그런 쓰레기들과 웃고 떠듭니다. 양비론적인 인간들이죠.

 

잘못이라면 내가 사는 사회를 벗어나 그들의 울타리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들어가면 안될 쓰레기무덤에 들어갔다가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인간을 만난 죄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이들 치기정신같은 허무맹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인격모독을 할 때, 대응을 하지 않자 그 폭력성은 도를 넘어 잘못된 자료로 남의 신상을 털어 인격살인까지 하는 거짓말의 극대화한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들이 내게 보냈던 메시지 등 자료를 공개하고 적극적 으로 대응하면서 진실이 드러나자 숨어버리고 침묵을 지킵니다.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치고 싶은 쓰레기는 이멜 전화로 애걸복걸합니다 살려달라고요. 자신이 뱉어낸 쓰레기무덤 위에서.

앞서 말씀 드렸듯, 이 사회가 당해 본 사람만이 이해를 하는 사회라면 뭔가 분명 잘못 되어가는 사회라는 겁니다. 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결론짓고, 자신만이 사는 방식대로 타인을 매도하고 강요를 하는 것은 이기주의의 결정체라는 것이죠. 

무려 오개월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아무것도 나질 않았습니다.
쓰레기무덤속에 깊이 들어가서 보이지 않는 쓰레기들뿐 뭐 하나 해명, 사과 안 합니다.
 

‘Straw Dog’에 나오는 하나하나의 인부들 1.2.3 같은 인간 쓰레기들이 내면에 폭력성을 감춘 채 이인규를 욕하고 노무현 한명숙을 지지하며 개혁을 부르짖고 상식적인 사회를 꿈 꾼다고 이 순간까지 거짓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수구들이 이들의 주장에 동조를 할 수가 있을까요 도덕적 가치가 없는 입진보 쓰레기들 말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당신 주위에 이런 쓰레기들이 사회에 버티고 있는 한, 이들의 폭력성이 또 누군가를 죽일지도 모릅니다. 뭔가 나타나면 하이에나처럼 물고 뜯고 찢어 죽이려고 발톱과 이빨만 감추고 있을 뿐입니다.

SNS 시대, 도덕적가치는 상실한채, 집단 이기주의에 동조해서 허위사실을 끈임없이 생산하고 서슴없이 인격살인을 자행하는 인간은 당신의 주위에 많습니다. 끈임없이 거짓말로 유혹하고 재생산 하면서 사회를 도가니의 축소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말로만 개혁 진보를 외치고 사회 저변에 기생하는 이런 쓰레기들은 개혁에 걸림돌만 될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개혁을 한다고 주장해도 그들이 있는한 수구들의 공격대상만 됩니다.

개혁은 '도덕성'이 실종되면 무의미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이 사회도 근본적인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개혁의 꿈은 요원할 것입니다. 지난 총선, 대선에서 한날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저변에 깔려있는 도덕적가치의 실종이었다는 사실은 꼭 아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타인에게 자신의 잣대로 강요를 하는 건 아닌지, 타인의 인격을 함부로 재단하는 건 아닌지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Straw Dogs의 뜻:

노자 <도덕경> ‘천지는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추구(芻狗: 짚으로 만든 개)와 같이 여긴다’라는 구절 중 ‘지푸라기 개’에서 따왔다. 저자가 노자 용어를 제목으로 삼은 것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스대지만 자연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지푸라기 개’와 다를 바 없는 하찮은 존재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인간이 지구의 균형을 흔들어 댄다면 지푸라기 개처럼 짓밟히고 팽개쳐질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하자는 전언이기도 합니다.